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후 식량 수급이 계속 악화되면서 특히 인구 1백만에 이른 대도시 경성부의 식량 수급 안정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에 기존 경성부식량배급조합을 해소하고 항구적이고 종합적인 양곡 배급을 위해 1941년 12월 12일 경성부양곡배급조합을 설립했다.
경성부는 1941년 11월 20일 신상업조합설립실행위원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양곡배급조합 설립을 위해 총 출자액 및 총 출자구수(出資口數), 총대수(總代數)를 결정하고 조합원 가입 신청 단체의 배급 관련 안(案)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 결과 출자총액은 80만원, 총 출자구수는 1600구, 총대는 35명, 조합원 750명으로 결정하였다.
경성부는 1941년 12월 12일 부민관에서 ‘전시 식량은 문제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성부양곡배급조합을 창립하였다. 기존 경성부식량배급조합이 일부 정미업자로만 구성되어 배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식량배급조합을 해소하고 식량 배급의 강제성을 강화하기 위해 경성부내 778명의 쌀 소매상을 전부 규합하고 자본금 1백만 원으로 경성부양곡배급조합을 창립하였다. 경성부양곡배급조합은 이후 경성부의 식량 수급 조절과 배급을 담당하다가 1943년 조선식량영단이 만들어지면서 해산되었다.
경성부양곡배급조합은 도(道)양곡배급조합 - 부군(府郡)양곡배급조합 - 읍면(邑面)양곡배급조합의 체제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식량 통제 기구의 일환으로서 인구 1백만의 경성부 식량통제를 담당한 기구였다. 미곡뿐 아니라 양곡 전체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경성부의 도매상뿐 아니라 소매상까지 규합하여 이전의 경성부식량배급조합에 비해 한층 강화된 식량 통제를 행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