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 슈고 이타로(1870~?)는 사가(佐賀)현 출신으로 1893년 관서철도주식회사(關西鐵道株式會社)에 입사한 후 1900년 사일시은행(四日市銀行) 오사카 지점장을 거쳐 1903년 경부철도주식회사 경성 지점 창고 주임으로 조선에 건너왔다. 1905년 경부철도 전선(全線)이 개통되자 퇴사하여 1906년 용산[경성부 원정(元町), 현 원효로]에서 용산정미소를 설립했다. 그 후 용산거류민단 의장이 되어 용산 지역 재조 일본인 사회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1912년에는 경성상업회의소 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장까지 맡았다. 1914년 경성부협의회원에 선출되어 이후 1920년대까지 경성 재조 일본인 사회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용산정미소는 1906년 2월 재조 일본인 슈고 이타로가 용산에 설립하여 가업(家業)으로 유지하다가 1932년 8월 26일 용산정미소합자회사로 확대되었고, 1941년 5월 6일 용산정미소주식회사가 되었다.
용산정미소는 정미업과 그에 따른 부대 업무, 쌀의 위탁매매를 하였는데, 1919년 2월 3일 정미소 공장 화재로 240평 공장 전체와 창고 한 채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에도 영업은 계속하였다. 1932년 그의 장남 슈고 나가로(執行永郞)가 다른 출자자를 모아 자본금 1만 7000원~5만 7000원의 용산정미소합자회사로 확대 운영하였고, 회사는 경성부 강기정(岡崎町, 현 갈월동)에 있었다.
1941년에는 자본금 18만원의 용산정미소주식회사로 전환하였다. 사장은 합자회사 당시 동업자였던 이시다 토요키치(石田豊吉)가 맡고, 슈고 나가로(執行永郞)는 이사가 되었다. 강기정에 있던 회사를 경성부 용강정(현 용강동)으로 옮겼다.
용산정미소는 1910년 강제병합 이전 용산 지역에 진출한 재조 일본인이 설립한 정미소로 일제 식민지기 내내 계속 영업을 확장하며 재조 일본인 사회뿐만 아니라 경성부 미곡 유통 부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