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성업사는 1931년 5월 조선식산은행 주도로 담보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관리·경영·처분하고자 설립한 농업회사이다. 창업 초기에는 부동산 관련 수입이 80%를 차지했는데 1940년대 이후에는 성격이 크게 변했다. 총자산에서 유가증권 구성비가 부동산의 구성비를 능가하였다. 또 총수입에서 주식 배당금 수입 구성비도 경지 수입의 비중을 능가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자본집중과 집적을 전면에서 추구한 조선식산은행의 대리 기관·전위 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해방 후 미군정 관할로 들어갔고 소속 농지는 신한공사가 관리하게 되었다.
정의
1931년 5월 조선식산은행 주도로 담보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관리·경영·처분하고자 설립한 농업회사.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창업 이후 성업사의 경영은 크게 3시기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 제1기는 창업초인 1931~1933년으로 ‘토지·농사경영’ 수입과 ‘부동산 대차·관리’ 수입 등 이른바 부동산 관련 수입이 총 수입의 80% 이상을 점한 시기이다. 제2기는 1934~1936년으로 ‘유가증권의 취득·처분’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여 유가증권 집적을 개시하고 부동산을 급속히 매각한 시기이다. 제3기는 1937~1945년으로 전체적으로 전시 통제 경제 체제 강화에 따라 부동산 매각 템포를 늦추고 시국 관련 광공업 회사의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시기이다. 이에 총 자산 대비 부동산 비중은 30%로 떨어지고 유가증권 구성비가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식은 산하의 전문 부동산 관리·처분 기관으로 설립된 성업사는 1940년대 이후 성격이 크게 변했다. 총자산에서 유가증권 구성비가 부동산의 구성비를 능가하며 수위로 올라섰고, 총수입에서 주식 배당금 수입 구성비도 경지 수입[소작료 수입]의 비중을 능가하며 역시 수위가 되었다. 성업사는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존속하면서 단순한 식은 부동산의 관리 처분 기관이 아니라 산업과 기업의 창업자·발기자·인수자로서 일제하 한국에서 자본집중과 집적을 전면에서 추구한 식은의 대리 기관·전위 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기능과 역할
조선식산은행은 성업사 창업 자금 일체를 식은 대출금으로 출자하여 자본적으로 완전히 지배하였고. 인적으로도 설립 발기인 7인, 설립위원 3인, 창업 초·창업 후 중역들까지 대부분 조선식산은행의 과장 및 각 지점장을 역임한 전형적인 ‘식은맨’으로서 인적 지배도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5.24)
- 「일제하 금융자본의 농기업 지배 -조선식산은행의 성업사 설립과 그 운영」(홍성찬,『동방학지』68, 연세대 국학연구원, 1990)
-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中村資郞, 京城: 東亞經濟時報社,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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