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1923년 당시 여러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조직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에 각지의 국민대표들이 모여 협의하는 국민대표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개조 제의안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창조파와 개조파로 분열되었다. 창조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신할 새로운 주체를 설립하자는 입장이었고, 개조파는 임시정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편 보완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개조파는 '삼삼프락치야'라는 연합조직을 결성했다. 김철수(金錣洙)를 비롯한 상해파 고려공산당에서 3인의 대표원단, 김동삼(金東三)을 비롯한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들로 구성된 양남(兩南) 대표원단에서 3인,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들로 구성된 양서(兩西) 대표원단에서 안창호(安昌浩) 등 3인이 그 구성원이었다.
삼삼프락치야는 민족운동의 최고기관으로 상해임시정부를 개조할 것을 결정하고, 국민대표회의에 임정을 참가시켜 헌법을 제정하여 중앙기관을 조직하려 했으나 창조파와의 대립으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