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

현대사
인물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인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4년 11월 3일
사망 연도
1995년 8월 17일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
주요 저서
민족경제론
주요 경력
조선대학교 교수
대표 상훈
단재학술상(1987)|대통령 표창(1996)
관련 사건
인혁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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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박현채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진보적 경제학자이다. 광주서중학교에 재학 중 빨치산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여 경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재야 경제학자로서 많은 논문과 책을 집필하였으며, 1971년 박현채가 집필을 주도한 『대중 경제론 백문백답』은 김대중의 ‘대중 경제론’에 영향을 끼쳤다.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95년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정의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인물.
가계 및 인적 사항

1934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서 부친 박경모와 모친 오순희에게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광주 수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빨치산에 참여하여 문화부 중대장 등을 역임하며 2년간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54년 전주고등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거쳐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61년에 졸업하였다. 김희숙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주요 활동

1959~1964년 한국농업문제연구회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1964년 인민혁명당사건(人民革命黨事件, 인혁당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실천 활동과는 더욱 엄격하게 거리를 두고 정치경제학적 연구에 매진하였다. 1960년대부터 다양한 매체에 경제 관련 글들을 기고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후보였던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여러 진보적 경제학자들과 함께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부터 20여년 간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재야 경제학자 생활 끝에 6월항쟁 이후인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제도권 학계로 진입하였다.

1986년 소설 『 태백산맥』이 출간되자 큰 자극을 받고 작가인 조정래를 만나 자신의 빨치산 경험을 들려주어 소설 속 빨치산 전사 조원제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의 충격 속에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1992년 가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 끝에 1995년 8월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 평론 관련 글을 기고하기 시작해 수십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훗날 ‘민족경제론’으로 집약되는 주요 연구 내용은 농업에 있어 협업화를 위시하여 대기업 위주가 아닌 중소기업 진흥, 수출 대신 수입 대체 산업화를 통한 자립 경제 추구 등이었다. 이후 신식민주의 이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결합하여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초중반 이대근 등과 함께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하여 비판적 지식인과 학생운동가들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1977년 변형윤 등과 『한국 농업문제의 인식』 출간을 필두로, 주저 『민족경제론』을 위시하여 『전후 30년의 세계 경제사조』, 『민중과 경제』, 『한국 농업의 구상』, 『자본주의 발달사 연구 서설』, 『한국경제의 구조와 논리』, 『한국 자본주의와 민족운동』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2006년에는 평생 저술한 내용을 묶어 전 7권으로 『박현채 전집』이 발간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7년에 제2회 단재학술상을 수상하고, 1996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삼웅, 『박현채 평전』(한겨레출판, 2012)
박현채추모문집위원회 편, 『아! 박현채: 박현채추모집』(해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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