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민국의 언론인 겸 사회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이후 국립해양대학교(지금의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안동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통역장교가 되었다. 1957년 소령 예편 후 기자가 되어 1957~1964년 합동통신 외신부, 1964∽1971년 조선일보사와 합동통신사 외신부장을 지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석사과정 수료 후 1972~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됐으나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에 복직되었다, 2010년 12월 5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이러한 활동으로 정권과 신문사의 압력으로 조선일보사에서 반강제로 퇴사하고 합동통신사로 이직하였으나, 1971년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해 재차 해직되고 한양대 교수로 이직하였다. 1972년 3월 18일 결성된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회의의 이사로 참여하였다.
1976년 대학에서 해직되어 저술 활동 중 1977년 11월 23일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반공법」 위반 혐의로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80년 1월 19일 만기 출소하여 대학에 복직하였으나, 5월 15일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가 재차 해직되었다.
1980년 5월 17일에는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조사받고 풀려나기도 하였다. 1984년 7월 17일 4년 만에 복직되어 대학으로 돌아왔다.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하고 한겨례신문사 논설고문 및 이사직을 맡았다. 1989년 『한겨레』의 방북 취재 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의해 구속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평생 9차례 연행되고, 5차례 구속되었으며, 세 차례 기소되어 총 1,012일간의 수감 생활을 하였다. 2003년에는 이라크전 파병 반대 활동을 전개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권태선, 『진실에 복무하다: 리영희 평전』(창비, 2020)
- 김삼웅, 『리영희 평전: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책보세, 2010)
- 리영희‧임헌영, 『대화』(한길사, 2005)
- 리영희, 『역정-나의 청년시대』(창작과비평사, 1987)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