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평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찬으로 일본에 파견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사찬(沙?)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찬으로 일본에 파견된 관리.
활동사항

677년(문무왕 17) 겨울 11월에 사찬(沙湌)의 관등으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국정(國政)을 물었으며, 아울러 급찬(汲湌) 김호유(金好儒)와 대사(大舍) 김흠길(金欽吉) 등도 보내었다. 신라에서는 송사(送使) 나말(奈末) 피진나(被珍那)와 부사(副使) 나말 호복(好福)이 김청평을 축자(筑紫)까지 호송하였으며, 같은 달에 숙신(肅愼)의 7명이 그를 따라 이르렀다. 이듬해 3월에 일본 정부는 김청평을 포함하여 13명을 서울로 불렀으며, 같은 해 8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이때 김청평은 일본으로 표류해 갔던 박자파(朴刺破) 등을 데리고 돌아왔다.

참고문헌

『일본서기(日本書紀)』
『일본 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최근영 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4)
「8세기의 신라와 일본의 관계」(김은숙, 『국사관논총』 29, 1991)
「신라 관등 아찬·나마에 대한 고찰」(권덕영, 『국사관논총』 21, 1991)
집필자
김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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