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보면 수원약과(水原薬果)는 조선 전역에서 유명하였고, 인조(仁祖, 15951649)가 특별히 찾았던 음식이라고 전해진다. 인조가 병에 걸려 있을 때, 궁중의 주방[御廚]에는 입에 맞는 것이 없어서, 환관을 시켜 수원약과를 구해 오도록 보냈다. 당시 수원 부사인 조계원(趙啓遠, 1592~1670)은 주부(州府)에서 약과를 사사로이 헌납하는 것은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예(禮)가 아니라면서 조정의 명령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답변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인조는 비록 군신(君臣)의 사이이기는 하나 인척(姻戚)으로 얽힌 사이인데 어찌 그러한 인정조차 없냐며 웃었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수원약과이다.
약과(藥果)는 ‘꿀과 기름을 넣어 반죽한 과자’라고 하여 유밀과(油蜜果)라고도 한다. 수원약과는 일반 약과와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거의 유사하다. 약과를 만드는 법은 옛 조리서(調理書)에 자주 나오며, 약과는 조선시대 왕릉 제사에서도 중요한 제물(祭物)이었다.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 꿀, 술, 생강즙 등을 넣고 반죽한다. 반죽을 어떤 모양으로 빚었느냐에 따라 약과 명칭이 달라진다. 약과 반죽을 다식판에 찍으면 다식과(茶食菓), 크게 자르면 대약과(大藥果), 작게 자르면 소약과(小藥果), 네모 모양으로 자르면 모약과라고 한다. 모양을 낸 약과 반죽은 조청이나 꿀로 반죽하여 높은 온도의 기름에 튀기면 타기 때문에 110℃ 정도의 온도에서 서서히 지진다. 그러면 켜가 생기면서 바삭한 질감이 생긴다. 지진 약과는 꿀이나 조청에 즙청을 한 다음 건져낸다.
잘 만든 약과는 부드럽다. 그 비결은 너무 치대지 않아서 밀가루 속 글루텐 생성을 막아 바삭한 질감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수원약과로 유명한 용주사(龍珠寺)의 약과는 아예 반죽을 치댈 때 잣가루, 후춧가루, 계핏가루, 볶은 참깨 등을 넣어 버무려 치대는 것이 다르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하면 더욱 바삭하면서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따르면 특히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원찰인 용주사에서 약과를 잘 만들었는데, 품질이 좋아서 왕릉 제사 음식으로 바쳤다고 한다. 용주사는 두부를 비롯하여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의 제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찰이었다. 용주사의 약과는 현륭원의 제사에 쓰였고, 이는 수원약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