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는 명주실을 생산하는 과정 중 나오는 누에의 번데기를 찌거나 볶거나 탕으로 끓여 먹는 음식이다. 번데기가 길거리 음식으로 유행하게 된 계기는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양잠산업의 발달이다. 국가 정책에 발 맞추어 도시에 제사 공장이 많이 생겨났으며, 그 부산물인 번데기가 대량 생산되었다. 1960년대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도시 빈민층이 형성되었고, 대량으로 생산된 값싼 번데기는 고열량으로 든든히 속을 채울 수 있어 서민들에게 간식과 술안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번데기 식용의 역사는 우리나라 양잠업(養蠶業)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양잠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뽕나무를 가꾸어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짜는 방법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양잠업은 18세기 영조시대까지도 중요한 국가산업으로 여겨졌으며, 국가의 공물 수취 대상으로 농가 부업으로 장려되었다. 아마도 양잠업 과정 중에 명주실을 생산하기 위해 고치를 삶는 단계에서 부산물로 생긴 번데기는 자연스럽게 간식으로 섭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기록된 어떤 조리서에도 번데기를 식재료로 이용한 음식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번데기가 길거리 음식으로 유행하게 된 계기는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국가 권농정책에 힘입어 양잠산업이 발달하였고, 도시에 제사 공장(製絲工場)이 많이 생겨나며 그 부산물인 번데기가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960년대에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대량 이동하면서 도시 빈민층이 형성되었고, 대량으로 생산된 값싼 번데기는 고열량으로 든든히 속을 채울 수 있어 서민들에게 간식과 술안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번데기는 통조림 형태로 만들어져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술안주로 인기가 많은 번데기탕은 번데기에 물을 붓고 마늘, 고추, 대파 등을 넣고 한소끔 끓여 먹는 탕이다.
일반적으로 번데기는 벌레이기 때문에 혐오식품으로 구분되어 사람들은 번데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하지만 작은 새우처럼 아삭한 질감과 고소하고 담백한 맛 때문에 애호가들은 술안주나 간식으로 번데기를 즐겨 찾는다. 번데기탕은 마늘, 청양고추 등 향신료를 넣어 잡냄새와 느끼함을 잡아 즐기는 경우가 많으며, 유원지나 축제 현장에서는 아직도 길거리 음식으로 번데기를 파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