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0년대 초에 일제가 조선을 잠업원료공급지로 개편하기 위해 만든 조합.
개설
이로 인해 일본은 잠사원료의 원활한 확보가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는데, 조선의 기후와 풍토가 양잠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양잠에 필요한 노동력, 즉 부녀 잉여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조선을 잠사원료공급기지화하기로 하였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양잠장려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담당할 기구를 조직하였으니, 바로 양잠조합이 그것이다.
내용
조합의 설립은 점차 확대되어 1921년에는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 각 도에 설치되었다. 1925년에 이르러서는 조합수가 119개, 조합원은 41만 2730명에 이르렀다. 운영경비는 회원에 대한 부과금, 수수료 및 지방비와 보조금으로 충당하였다.
설립 직후의 사업 내용은 ① 뽕나무 묘목 · 누에씨 · 잠구(蠶具) 등의 공동구입, ② 뽕나무심기의 장려, ③ 치잠(雉蠶)의 공동사육, ④ 양잠강습회 및 전습회의 개최 등이었다. 그뒤 점차 잠견(蠶繭)의 생산이 증가하자 1916년부터 잠견의 공동판매사업도 실시하였다.
조합에서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뽕나무 묘목과 누에씨를 구입, 이를 농민에게 강매하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 농가를 일본의 잠사연료공급기지화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다.
그러나 조선 농민들은 여기에 반발해 뽕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하고, 잠종대지(蠶種臺紙 : 누에알을 받는 종이)는 선반 위에 올려놓은 채로 발아시켜 버렸다. 또한 대금을 체납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독부의 정책에 따르지 않았다.
변천
참고문헌
- 『한국농촌단체사(韓國農村團體史)』(문정창, 일주각, 1961)
- 『朝鮮農業發達史』-政策篇-(朝鮮農會,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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