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포탕은 조선시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두부를 주재료로 하는 맑은 탕을 일컫는다. 1766년(영조 42) 유중림(柳重臨)이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연포갱 만드는 법(造軟泡羹法)’이 기록되어 있고, 1849년(헌종 15) 완성된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0월조에는 “지금 먹는 반찬 중에 가장 좋은 음식이 두부이며 두부를 가늘게 썰고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지지다가 닭고기를 섞어 국을 끓이면 이것을 연포탕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씌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 『주찬(酒饌)』에도 ‘연포(軟泡)’ 기록이 있고,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지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연포국이 기록되어 있다.
『증보산림경제』에서 “연포갱은 닭을 깨끗이 손질하고 쇠고기 한 덩어리와 함께 푹 삶아 쇠고기는 건져 내고 닭고기는 가늘게 찢어 놓는다. 한편 두부를 만드는데 단단하게 눌러야 하며 길이는 89푼, 사방 너비는 23푼으로 썰고 소금을 뿌려 잠깐 둔다. 솥뚜껑을 숯불 위에 올려놓고 기름을 많이 두르고 두부를 지지는데 두부에 지지지 않은 면이 없도록 골고루 지진다. 그런 다음 먼저 쇠고기를 삶아서 고기를 꺼내어 따로 두고, 지져 놓은 두부를 쇠고기 국물에 넣고 또 기름과 장을 넣어 간을 알맞게 맞춘 뒤에 생강, 파, 참버섯,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반드시 곱게 채를 썰어서 넣는다. 또 그릇에 고기국물을 조금 담아 고운 밀가루를 골고루 개는데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삶은 두부를 3~4조각씩 가느다란 대꼬챙이를 세로로 꽂아 꼬치를 만들어서 국물에 담가 먹는다.”고 하였다.
『주찬』에는 “두부를 손가락 같이 썰어서 기름에 지져 내고, 닭 삶은 물에 장국을 섞어서 달인다. 삶은 닭은 난도질하여 다지고, 석이, 표고, 파, 생강도 다져서 섞어 넣고, 가루즙도 조금 풀어서 모두 넣고 끓인다. 후춧가루, 초피가루를 뿌려서 쓴다.”고 하였다.
최근 연포탕은 산낙지를 끓인 맑은 탕이라 인식되는데, 산낙지를 소금물에 담가 깨끗이 손질하여 멸치 다시마 장국 국물에 낙지를 삶아 건진 다음 썰어 다시 넣고 쪽파,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더 끓인 국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나리와 다진 고추를 더 넣어 국물의 색이 빨갛게 될 때까지 끓여 먹는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연포탕은 쇠고기나 닭고기 육수에 지진 두부를 넣은 탕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산낙지를 주재료로 끓여 먹는 맑은 탕을 연포탕이라 한다. 이는 두부가 더 이상 귀한 주재료가 아닌 이유도 있고, 산낙지가 뜨거운 육수에서 연꽃처럼 다리가 펼쳐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