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삼서(內用三書)』는 조선시대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사용한 달력이다. 책력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웠으며, 종류가 다양한 『시헌서(時憲書)』와 달리 한 가지 형태만으로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 연력(年曆)을 대표하는 『시헌서』는 형태에 따라 큰 책력에 해당되는 장력(粧曆)과 이보다 작고 소략하게 만들어진 중력(中曆), 소력(小曆) 등으로 제작되었다. 『내용삼서』는 장력에 해당된다. 화려한 겉표지를 갖춘 장력은 다시 책을 매는 실의 종류에 따라 백장력(白粧曆)과 청장력(靑粧曆)으로 나눠지며, 그 외 『첩장력(貼粧曆)』이라 불리는 장력도 있었다. 이들 장력들은 고급 역서로서 대체로 왕족이나 양반들이 사용한 역서였다.
대전(大殿)이나 내전(內殿), 세자궁(世子宮)과 영사(領事), 제조(提調) 등의 고위층들이 사용한 연력인 『내용삼서』는 달력의 기능뿐만 아니라 일관(日官)들이 택일(擇日)이나 길흉을 알아보는 역서로 활용되었으며, 그 저본은 중국력(中國曆)이었다.
『내용삼서』의 원래 명칭은 『내용삼력(內用三曆)』이었으나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弘曆)의 ‘력’ 글자를 피해 『내용삼서』로 개칭했다. 『내용삼서』의 삼력은 역주(曆註)에 실려 있는 상(上),임(壬), 하(下)를 의미한다. 상이란 황제나 왕들의 의(宜), 불의(不宜) 즉 ‘그날 하기에 좋은 일’과 ‘안좋은 일’을 적어놓은 것이다. 임은 육임력(六壬曆)의 의, 불의인데, 중국과 달리 조선시대에 편찬된 『내용삼서』는 상과 하 부분에 대해서만 의, 불의가 적혀져 있고 임은 공란으로 처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구성 내용으로 보았을 때, 『내용삼서』는 일반인이 아닌, 왕실과 고위 관리, 일관들이 참조한 연력으로서, 상과 임은 없고 하의 역주만 실려있는 15장의 『시헌서(時憲書)』와 비교해 50장이 넘는 고급 달력이었다. 『내용삼서』를 발간할 때는 역서명을 “대한건륭사십사년세차기해내용삼서(大淸乾隆四十四年歲次己亥內用三書)”와 같이 중국 국호와 연호를 붙였다. 조선 후기의 역서명은 병자호란 이후 청(淸)의 연호를 따랐으며, 조선시대 역서에서 자국의 국호와 연호를 사용하게 된 것은 1895년 이후부터이다.
장서각에 소장된 『내용삼서』는 1769년(영조 45년) 관상감(觀象監)에서 펴낸 것으로 전체 13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