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선명력(宣明曆)』, 『수시력(授時曆)』, 주8, 『시헌력(時憲曆)』 등의 모든 역서(曆書)는 연월일과 24방위의 주1을 예측하기 위한 점성학적 역주를 기재하고 있다. 이렇듯 역주를 갖춘 역서를 구주력(具註曆)이라 부른다. 구주력은 인간의 삶을 우주 순환 주기와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즉 우주의 움직임을 해석함으로써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날이 좋은지 나쁜지, 어떤 방위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역주는 택일(擇日)과 택방(擇方)을 위해 시간과 방위의 길흉을 도출하는 독특한 시간 해석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시헌력』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역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 시간에 따른 인간 행위의 길흉을 예측할 수 있도록 주2에 첨부되는 다양한 시간 주기들의 체계인 ‘시간 역주’가 있다. 둘째, 대체로 일정한 주기로 24방위를 순환하면서 각 방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행위의 길흉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연신(年神)과 월신(月神)과 일신(日神)의 체계인 ‘방위 역주’가 있다. 셋째, 시간 역주과 방위 역주의 체계에 의해 산출되는, 인간 행위의 의(宜)와 불의(不宜)의 체계인 ‘행위 역주’가 있다.
『시헌력』의 역일을 수식하는 시간 역주에는 60일 주기의 일진(日辰), 30일 주기의 납음오행(納音五行), 28일 주기의 28수(二十八宿), 12일 주기의 12직(十二直)이 있다. 엄밀히 말해 십이직은 12절기를 기준으로 절기(節氣)와 절기 사이에서만 12일 주기로 반복된다.
방위 역주는 연신, 월신, 일신의 위치를 열려준다. 『시헌력』의 권두(卷頭)에는 해당 연도의 24방위에 배치된 연신들을 보여주는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가 실려 있다. 「연신방위지도」는 공간을 24방위로 나눈 후 한 해 동안 각 방위의 길흉을 관장하는 총 32위의 연신을 배치한 그림이다. 총 35위의 연신 가운데 주3, 세덕합(歲德合), 세지덕(歲枝德) 같은 중요한 길신(吉神)을 제외하고 32위만 그림에 등장한다. 또한 32위 가운데 주서(奏書)와 박사(博士)만 길신이고 나머지 30위는 모두 주4이다. 대체로 연신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24방위를 순환하는데, 연신에 따라 24방위를 일주하는 주기는 4년, 5년, 10년, 12년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시헌력』의 각 월 역면(曆面)에는 4개월 또는 12개월 주기로 24방위를 순환하는 여섯 월신인 천덕(天德), 월염(月厭), 월살(月殺), 월덕(月德), 월덕합(月德合), 월공(月空)의 위치가 기재되어 있다. 또한 『시헌력』의 권말(卷末)에는 60일 주기로 사람이 사는 방안을 순환하는 일유신(日遊神), 30일 주기로 사람의 몸속을 순환하는 인신(人神), 30일 주기로 각 방위를 순환하는 태백(太白) 같은 일신의 위치가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시헌력』에는 제사(祭祀), 출행(出行), 이사(移徙), 침자(針刺), 재종(栽種), 납재(納財), 재의(裁衣), 입학(入學), 목욕(沐浴), 주5, 회친우(會親友), 소사우(掃舍宇), 목양(牧養), 상량(上梁) 등 중요 행위의 길흉을 ‘의’와 ‘불의’의 형태로 표시하는 행위 역주가 있다. 주로 28수와 12직과 같은 시간 역주가 ‘의’와 ‘불의’의 행위 역주를 산출하는 역할을
윤월(閏月)주6의 역면에는 월에 관한 길흉의 역주는 없고 역일에 붙는 시간 주기와 ‘의’와 ‘불의’의 역주만 기재되어 있다. 또한 『시헌력』의 권말에는 대체로 연월일의 변화와 무관한 잡다한 역주가 매년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실려 있었다.
1896년(고종 33)부터 태양력(太陽曆)으로 주7 후,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역주는 ‘미신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1908년(융희 2)까지는 음력 역서와 양력 역서가 같이 발행되었으므로 음력 역서인 『시헌력』과 『명시력(明時曆)』에는 여전히 이전과 똑같은 역주가 남아 있었다.
1909년부터는 순수한 음력 역서는 폐지되고, 양력을 위주로 음력과 양력을 결합한 『음양합병역서(陰陽合倂曆書)』만 발행된다. 따라서 1909년(융희 3) 『대한융희3년력(大韓隆熙三年曆)』부터는 연과 월에 붙는 대부분의 역주가 사라지고 역일에 붙는 역주만 기재되며, 역일의 역주도 길일을 표시하는 ‘의’의 역주만 남고 흉일을 표시하는 ‘불의’의 역주는 모두 사라진다. 또한 권말에는 ‘연신방위도’라는 이름으로 변형된 「연신방위지도」가 실리고, 몇 가지 흉일과 점술의 사항만 간략히 기재된다. 이러한 역서 체재는 1911년부터 1936년까지 발행된 일제강점기의 『조선민력(朝鮮民曆)』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1937년부터는 『조선민력』이 폐지되고 일본에서 발행하는 ‘본력(本曆)’의 하위 역서인 '약력(略曆)'이 발행되어 역서의 완전한 식민화가 이루어진다. 즉 조선에서 변형된 일본 역서가 발행된 것이다. 1937년 『소화(昭和) 12년 약력』부터는 음력일과 일진을 제외한 모든 역주가 폐지된다. 그리고 1940년에 발행된 『소화 15년 약력』부터는 일진만 남고 음력일마저 사라지면서 공식 역서에서 역주가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