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표준형 원전(Korean Standard Nuclear Power Plant, KSNP)은 1,000MW급 가압 경수로를 표준으로 삼아 1984~1999년에 자체적으로 개발된 원전이다. 한국 표준형 원전은 미국의 1,300MW급 원전인 ‘시스템 80’을 바탕으로 한국의 실정을 반영하여 개발되었다. 한국 표준형 원전은 울진 3, 4호기를 시작으로 총 10기의 원전에 적용되었으며, 2005년에는 OPR-1000(Optimized Power Reactor)로 거듭났다.
한국 정부는 1982년에 제7차 장기 전원 개발 계획(長期電源開發計劃)을 수립하여 영광 3, 4호기를 건설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1983년에는 ‘원전 건설 사업 장기 추진 방향’이 마련되었는데, 그것은 기자재 국산화율 90% 달성, 표준형 원전 건설에 의한 건설비 절감 등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에 과학기술처는 표준형 원전의 개발을 위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Korea Power Engineering Company, KOPEC)에 기초 조사를 의뢰했다. 한국전력기술은 전담 조사팀을 구성하여 표준형 원전에 적합한 노형(爐型)과 용량, 그리고 표준화의 범위와 내용 등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를 추진했다.
1984년 4월에는 1,000MW급 가압 경수로 원전을 표준발전소로 삼아 영광 3, 4호기부터 건설한다는 방침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기술 자립에 관한 항목이 포함된 ‘원자력 발전 경제성 제고 방안’(일명 ‘원전 기술 자립 계획’)이 마련되었고, 9월에는 동력자원부를 중심으로 ‘표준 원자력 발전 설계 사업을 위한 정책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에 한전,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전력기술, 한국중공업(현재의 두산중공업) 등의 관계자들은 원전 기술의 자립을 위한 기관별 역할 분담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 표준형 원전’ 혹은 ‘한국형 표준원전’으로 불리는 ‘KSNP(Korean Standard Nuclear Power Plant)’란 용어도 이즈음에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2월에는 제7차 장기 전원 개발 계획이 확정되었는데, 그 골자는 영광 3호기를 1995년 3월, 영광 4호기를 1996년 3월에 준공한다는 데 있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선진 기술의 전수를 전제로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영광 3, 4호기를 참조 발전소로 삼아 한국 표준형 원전의 설계, 제작, 건설에 필요한 기술 능력의 95%를 1995년 말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85년 7월에 개최된 제214차 원자력위원회는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에 관한 역할 분담 방안을 결정했다. 원전 건설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는 ‘한전’, 원전의 종합설계는 ‘한국전력기술’, 원자로 계통(nuclear steam supply system, NSSS) 설계와 핵연료 설계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로 계통에 들어가는 기기 제작 및 공급은 ‘한국중공업’, 핵연료 제작은 ‘한국핵연료주식회사(현재의 한국원전연료)’가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1985년 10월에는 한전, 한국중공업, 한국원자력연구소의 공동 명의로 원자로 계통의 설계, 제작, 공급에 관한 입찰 안내서가 외국의 주요 업체들에게 발송되었다. 1986년 3월에는 해외 응찰서가 접수되었는데,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WH)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 CE), 캐나다원자력공사(Atomic Energy of Canada Limited, AECL), 프랑스의 프라마톰(Framatome, FRA)이 각축을 벌였다. 이처럼 세계 유수(有數)의 업체들이 입찰에 응모한 까닭은 당시에 구매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 미국에서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 사고(Three Mile섬原子力發電事故)가 발생한 이후에 원전 사업은 하강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1986년 9월에는 계약 협상 대상자가 선정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최종 낙찰자가 발표되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원자로 계통 설계와 기자재 공급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담당하게 되었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1,300MW급 가압 경수로(加壓輕水爐)인 ‘시스템 80’은 이미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한국에 대한 기술 이전에도 적극적인 의사를 표방했던 것이다. 참고로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1989년에 스웨덴의 ABB와 합병되어 ABB-CE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밖에 플랜트 종합설계는 서전 앤 런디(Sargent & Lundy, S&L), 터빈 발전기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초기노심 핵연료 공급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 핵연료 제조는 지멘스(Siemens)로 낙찰되었다.
1987년 4월에는 한전이 한국전력기술, 한국중공업, 한국핵연료 등 3개의 주계약자와 종합설계 및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동시에 3개의 주계약자는 한국원자력연구소 및 외국의 업체들과 기술 도입 및 부품 도입을 위한 하도급 계약(下都給契約)을 체결했고,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원자로 계통 공동 설계 계약을 별도로 체결했다.
이에 앞선 1986년 12월에는 한국의 연구진이 기술 이전(技術移轉)을 받기 위해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위치한 미국 코네티컷 주 윈저로 파견되었다. 한국의 연구진은 한국원자력연구소 48명, 한전 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윈저사무소’라는 특별 조직을 설립했다. 처음에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한국의 기술 수준을 무시한 채 핵심 역할은 맡기지 않고 허드렛일이나 쉬운 업무만 담당하게 했다. 이에 한국의 설계 팀장을 맡았던 이병령 실장은 동등한 작업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핵심 부분에 참여하지 못하면 설계팀을 철수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한국의 연구진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과 대등한 조건 아래 공동 설계에 임할 수 있었고 전체 작업량의 55% 이상을 수행해 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1,000MW급의 독자 모델을 설계했다. CE가 보유한 원전은 1,300MW급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규모를 줄여 나가는 일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에 버금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중공업도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기술 지원을 활용하여 원자로 용기, 증기 발생기, 터빈 발전기 등의 핵심 부품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전력기술은 서전 앤 런디의 협력을 바탕으로 원전의 보조 설비를 설계하는 업무를 직접 수행했다. 한전은 이러한 성과들을 결집하여 한국 표준형 원전의 참조 발전소인 영광 3, 4호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영광 3호기는 1995년 3월에, 영광 4호기는 1996년 3월에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1987년 5월에는 최초의 한국 표준형 원전에 해당하는 울진 3, 4호기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실시되었다. 1989년 4월에는 한국 표준형 원전의 건설이 장기 전원개발 계획에 포함되었고, 1990년 7월에 개최된 제225차 원자력위원회는 한국 표준형 원전 건설 기본 계획을 확정했다. 울진 3, 4호기의 경우에는 외국의 별다른 도움 없이 한국이 독자적으로 발전소 전체를 설계, 제작, 건설할 수 있었다. 1998년 8월에는 울진 3호기의 준공식이 거행됨으로써 한국 표준형 원전 시대가 개막되었고, 1999년 12월에는 울진 4호기가 상업 운전에 들어갔다. 1995년 북한의 경수로 지원 사업 때 활용된 모델도 한국 표준형 원전이었다.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의 첫 번째 특징은 국내 기관들이 원전 건설의 전 분야를 책임지고 주도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 방식은 제1세대(1970~1983년), 제2세대(1978~1989년), 제3세대(1987~1999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리 1, 2호기와 월성 1호기는 제1세대, 고리 3, 4호기, 영광 1, 2호기, 울진 1, 2호기는 제2세대, 영광 3, 4호기와 울진 3, 4호기는 제3세대에 해당한다.
제1세대에서는 국내의 기술 기반이 취약하여 외국 업체에 의한 일괄 발주 방식이 적용되었고, 제2세대에서는 외국 업체 주도의 분할 발주 방식을 통해 부분적인 국산화가 추진되었으며, 제3세대의 경우에는 국내 업체 주도의 분할 발주 방식으로 상당한 기술 자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원전기술 자립도는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이 시작된 1984년에는 60%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5년에는 약 95%로 향상되었다.
두 번째 특징은 효율적인 사업관리로 공기 준수와 공사비 절감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한전은 당시까지 11기의 원전을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사업관리 절차서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운영했으며, 방대한 공사비를 관리하기 위해 계획 공사비와는 별도로 목표 공사비를 산정하면서 매년 공사비를 재평가하는 심사 분석을 실시했다.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의 세 번째 특징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표준형 원전 사업에는 당시에 건설된 1,000MW급 원전 중에서 가장 강화된 안전 기준이 적용되었다. 한국 표준형 원전은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 사고 후속 조치를 반영한 최초의 제3세대 원전으로 기존의 인허가 규제 요건 이외에 중대 사고 예방과 사고 완화의 개념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한국 표준형 원전은 ‘시스템 80’이 갖추고 있지 않은 안전감압 계통을 설치했고, 한국인의 체형을 고려한 운전 제어 설비를 갖추었으며, 발전소 정전 사고 대처 기간을 종전의 4시간에서 8시간으로 증가시켰다.
울진 3, 4호기에 이어 한국 표준형 원전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건설되었다. 영광(한빛) 5, 6호기, 울진(한울) 5, 6호기, 신고리 1, 2호기, 신월성 1, 2호기가 그것이다. 2005년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한국 표준형 원전의 명칭이 OPR-1000(Optimized Power Reactor)으로 바뀌었고, 국내에서는 OPR-1000이 2011년에 준공된 신고리 1호기부터 적용되었다. 신월성 1, 2호기의 경우에는 한국 표준형 원전 설계 개선 사업을 통해 97개의 개선 사항을 반영하여 건설된 바 있다.
이와 함께 1992~2001년에는 1,400MW급 차세대 한국형 표준원전에 해당하는 APR-1400(Advanced Power Reactor)을 개발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 APR-1400은 2007년 착공한 신고리 3호기부터 적용되었으며,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