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복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3일 순천군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서 파견한 차경신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68년 1월 5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자산면(慈山面) 기탄리(岐灘里)에서 태어났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0월경 평양신학교 기숙사에서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에게 향촌회를 조직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鄭燦成), 최복길(崔福吉)과 함께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大韓國民會婦人鄕村會)를 조직하였다. 윤찬복이 회장을 맡았으며, 정찬성과 최복길은 회계를 맡았다.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는 대한국민회 산하 기구로서, 후원금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덕균(韓德均), 김화자(金花子), 김양선(金良善), 방문식(方文植), 김건신(金健信), 김오복(金五福), 현도명(玄道明), 옥순영(玉淳永), 박은감(朴恩感), 이관옥(李觀沃), 이지윤(李志潤), 김경신(金敬信) 등 개신교 여성 신자를 회원으로 받았다. 회원으로부터 4원씩 회비를 거두어 1원은 운영비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금액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자금으로 모아 두었다. 이렇게 모은 자금 160원을 1920년 5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차경신(車敬信)에게 전달하였다. 차경신은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재학하던 중 2·8독립선언식에 참석하고 김마리아와 함께 2·8독립선언서를 갖고 귀국한 인물이다. 1920년 8월부터는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반을 두고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다.
윤찬복은 1921년 2월 27일 경찰에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