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례는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의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소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913년 4월 6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정(北町)에서 태어났다.
1928년 11월 초순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동급생 장매성(張梅性)이 주동이 되어 독서회인 소녀회 결성을 제안하자, 박옥련(朴玉連), 고순례(高順禮), 암성금자(岩城錦子), 남협협(南俠俠) 등과 함께 가담하였다. 이듬해인 1929년 5월에는 장매성의 집에서 박계남(朴繼南), 박채희(朴采熙), 김금연(金錦嬿), 김귀선(金貴先), 박현숙(朴賢淑)이 소녀회에 가입하였다. 소녀회 회원들은 매월 10전씩의 회비를 내어 사회과학 잡지와 서적을 구입하여 읽고 토론하였다. 소녀회는 1929년 6월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조직적 활동을 위해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 산하 독서회 회원들이 학생소비조합을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이 충돌하자, 소녀회 회원들과 함께 부상 학생을 구호하고 시위대에 식수를 공급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후 경찰이 광주학생운동으로 구속된 학생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소녀회의 존재가 발각되었다. 1930년 1월 15일 경찰에 의해 장매성을 비롯한 소녀회 회원 10명과 함께 경찰에 검거되었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측에서 소녀회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에게 퇴학을 종용하여 1930년 3월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1930년 7월 2일 남협협, 박채희, 고순례와 함께 병보석으로 가석방되었다.
소녀회 사건 관련자 11명은 1930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검사는 장매성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하였고, 장경례에게는 박옥련, 박계남, 고순례, 암성금자, 남협협, 박채희, 박현숙, 김금연, 김귀순 등과 함께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장경례 등 10명은 10월 6일에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소녀회 주동자인 장매성만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