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김규식이 거주하였던 사저이다. 일제강점기 부자였던 민영휘의 막내아들 민규식이 소유하였던 건물로, 8·15광복 직후 임시정부의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에게 기부되었다. 김규식은 1945년 12월 귀국 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될 때까지 거주하였으며, 2011년 대통령경호실[현, 대통령경호처]에 매입되었다. 삼청장은 한국민주당이 결성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와 함께,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역사 현장 가운데 하나이다.
삼청장(三淸莊)은 8·15광복 직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부주석이었던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과 그 가족이 거주하였던 공간이다. 일본의 조선 강제 합병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민영휘(閔泳徽: 18521935)의 막내아들 민규식(閔奎植)이 8·15광복 직후 김규식이 사용하도록 기부하였다. 민규식은 8·15광복 직후인 1946년 5월, 조선상공회의소 창립총회에서 회두(會頭)를 맡을 정도로 당시 조선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었다.
8·15광복 직후 삼청장에서는 주1과 남북협상 등 중요한 정치적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1946년 8월부터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장건상(張建相: 18831974)과 김규식 사이의 좌우합작운동을 위한 논의들은 대부분 삼청장에서 열렸다. 또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좌우합작위원회가 좌초된 이후, 김규식이 중심이 된 민족자주연맹의 회의가 삼청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앞두고 김규식이 38선 이남에서만 실시되는 총선거에 반대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2월 9일 삼청장을 방문하여 김규식과 오랫동안 요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또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총선을 둘러싼 논의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김구와 김규식은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지도자들과 남북협상을 갖기로 하였는데, 이러한 논의들도 1948년 3월 삼청장에서 이루어졌다.
1948년 3월 초에는 유엔조선임시위원단의 중국 대표와 메논 위원장이 삼청장을 방문하여, 김규식과 38선 이남에서의 총선거 및 남북협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중국 대표와 메논 위원장은 김규식의 총선거 참여를 종용하는 입장에서 삼청장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규식은 삼청장에서 민족자주연맹 회합을 열고 단독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단호히 밝혔다. 1948년 3월 10일 미군정청의 브라운 장군이 귀국할 때에는, 삼청장으로 김규식을 예방하여 이임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시기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으로 후퇴하는 북한군에 김규식이 납치된 이후 삼청장은 방치되었다. 이후 2007년에 민간에 팔렸다가 2011년 대통령경호실 현, [대통령경호처]에 매입되었다. 이승만의 사저 주2, 김구의 사저 주3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국가의 관리를 받는 것과 달리, 삼청장은 청와대 인근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국가유산 지정은커녕 일반의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