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사"
검색결과 총 9건
청사에 홍사로 상·하단을 두른 초롱.
청사초롱 (靑紗燭籠)
청사에 홍사로 상·하단을 두른 초롱.
조선시대 명나라의 조병영량사로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참전한 무신. 귀화인.
천만리 (千萬里)
조선시대 명나라의 조병영량사로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참전한 무신. 귀화인.
이판승은 참선·염불·간경 등 수행에만 전념하는 승려를 말한다. 승려들은 주로 참선・간경・염불로 수도를 하였던 것인데 참선・염불하는 승려를 수좌(首座)라 하고 간경하는 승려를 주로 강사(講師)라 불렀다. 이와는 달리 사찰을 운영하고 제반 사무를 맡은 승려를 사판승이라 하며, 주지는 대표적인 사판승의 소임이다.
이판승 (理判僧)
이판승은 참선·염불·간경 등 수행에만 전념하는 승려를 말한다. 승려들은 주로 참선・간경・염불로 수도를 하였던 것인데 참선・염불하는 승려를 수좌(首座)라 하고 간경하는 승려를 주로 강사(講師)라 불렀다. 이와는 달리 사찰을 운영하고 제반 사무를 맡은 승려를 사판승이라 하며, 주지는 대표적인 사판승의 소임이다.
1987년 7월 21일 정식으로 출범한 대학교수 대중운동조직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民主化를 爲한 全國敎授協議會)
1987년 7월 21일 정식으로 출범한 대학교수 대중운동조직체.
조선 중기에, 강원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신 (姜紳)
조선 중기에, 강원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서유영 (徐有英)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고려 전기에, 지중추원사,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김현 (金顯)
고려 전기에, 지중추원사,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민족교육촉진협의회 (民族敎育促進協議會)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나계종은 고려 후기 사헌부시사·전리좌랑·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공민왕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직을 역임하였다. 우왕 대에는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조선 건국 후에도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킨다며 고향에 머물며 관직을 사양하였다.
나계종 (羅繼從)
나계종은 고려 후기 사헌부시사·전리좌랑·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공민왕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직을 역임하였다. 우왕 대에는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조선 건국 후에도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킨다며 고향에 머물며 관직을 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