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술선(述先),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증밀직부사 나직(羅織)이며, 어머니 증함안군대부인(贈咸安郡大夫人)은 안동김씨로 김재택(金在澤)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15세 때에 공민왕으로부터 사서육경 전질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1360년(공민왕 9) 국자감시에 합격하였으며, 1362년 문과에 급제, 춘추관검열 · 사헌부시사 ·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성균관순유박사(成均館諄諭博士)를 겸임할 당시에 경전을 강론하여 집주(集註)에서 발명하지 못한 깊은 뜻을 많이 해석하였으며, 전리좌랑(典理佐郎)으로 재임할 때에는 경제책(經濟策)도 올렸다.
당시에 간신들이 국정을 어지럽히자 탄핵소를 올리려다가 노모의 만류로 중지하고 한때 사직하여 은거하다가, 1374년 예문관제학으로 제수되면서 선조 문절공(文節公)의 얼을 계승하여 따르라는 뜻으로 계종(繼從)이라는 이름을 공민왕으로부터 받았다.
또한, 『야사(野史)』를 저술하여 당시의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직필로 소상하게 기록하여 두었는데, 간당들이 밤에 나계종의 별당에 방화하여 태워버렸다.
조선이 건국된 뒤 권근(權近)이 나계종에게 벼슬에 나오라고 권유하였으나, 두 나라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거절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저서로는 『죽헌유집(竹軒遺集)』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