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낙전(樂全). 찬성사 민종유(閔宗儒)의 아들이며, 이모부인 재상 김군(金頵)의 집에 양육되었다.
풍채가 수려하였으며, 10세에 절에 나아가 글을 배웠는데 총명하여 글을 배우면 곧 그 뜻을 통하였다고 한다.
충렬왕이 이 소문을 듣고 불러서 국선(國仙)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후 과거에 급제하여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되고, 첨의주서(僉議注書), 비서랑(秘書郎)을 거쳐 군부정랑(軍簿正郎)에 이르렀고, 판도정랑(版圖正郎)에 이르러 세자궁문랑(世子宮門郎)을 겸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비서소윤(秘書小尹)이 되었으나, 이후 충렬왕이 복위하자 면직되어 충선왕을 따라 연경(燕京)에 4년간 머물렀다가 돌아와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었다.
1308년 다시 충선왕이 복위하자 전의부령(典儀副令)이 되고, 이어 선부의랑지제교(選部議郎知製敎)가 되었다가 밀직승지 겸 사헌집의로 승진하였다. 이어 평양윤(平壤尹)이 되었으나 얼마 뒤 파직되고, 4년간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나 녹봉은 전과 같이 받았다.
1313년 충숙왕이 즉위하자 선부전서 보문각제학(選部典書寶文閣提學)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 밀직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이어 대사헌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온 뒤 여흥군(驪興君)에 봉하여졌다. 충혜왕 때 밀직사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密直司事進賢館大提學知春秋館事)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