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실(朴實). 자는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박화(朴華)이며,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郎) 박인기(朴仁杞)이다. 이색(李穡)의 문인이다.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의직장(典儀直長)으로 등용되었다. 그 뒤 헌납(獻納)이 되었고, 우왕 때 문하사인(門下舍人)·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대사성 등을 거쳐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그들이 옛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설치한 철령위(鐵嶺衛)의 철폐를 교섭하여 성취하고 돌아와, 그 공으로 창왕 때 공신에 봉하여졌다. 공양왕 때 서운관(書雲觀)에서 이미 개경의 지운(地運)이 다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를 올리자, 음양에 의한 지리설의 허황됨을 역설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그 뒤 예문관제학 겸 대사성이 되었고, 1392년(태조 1)에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수찬할 때,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 공정성을 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뒤 태종이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를 내려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문장이 우아하기로 유명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정재일고(貞齋逸稿)』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