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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혜왕후는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부인이자 제9대 왕 성종의 생모이다.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과 혼인하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수빈(粹嬪)이 되었다. 여성 교훈서인 『내훈』을 저술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소혜왕후 (昭惠王后)
소혜왕후는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부인이자 제9대 왕 성종의 생모이다.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과 혼인하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수빈(粹嬪)이 되었다. 여성 교훈서인 『내훈』을 저술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조선 세조의 첫째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사망한 후 성종에 의해 추존된 왕.
덕종 (德宗)
조선 세조의 첫째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사망한 후 성종에 의해 추존된 왕.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공릉 (恭陵)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국왕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예종릉은 서쪽 언덕, 안순왕후릉은 동쪽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이다. 예종의 형인 덕종 경릉과 같은 고양 서오릉 내에 조성되어 있으며, 경릉과 왕릉 배치가 서로 반대이다.
창릉 (昌陵)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국왕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예종릉은 서쪽 언덕, 안순왕후릉은 동쪽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이다. 예종의 형인 덕종 경릉과 같은 고양 서오릉 내에 조성되어 있으며, 경릉과 왕릉 배치가 서로 반대이다.
조선후기 제24대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 (孝顯王后)
조선후기 제24대 헌종의 왕비.
양나라 승려 진관 등이 편찬한 「자비도량참법」의 상교정본을 들여와 1352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상교정본 자비도량참법 권1~3 (詳校正本 慈悲道場懺法 卷一~三)
양나라 승려 진관 등이 편찬한 「자비도량참법」의 상교정본을 들여와 1352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대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1대 문종의 비 인예순덕태후의 왕후릉이다. 인예순덕태후가 1092년(선종 9) 9월 2일(임오)에 서경에서 세상을 떠나 개경으로 운구해 온 후 대릉에 장례를 지냈다. 1098년(숙종 3) 숙종이 대릉을 참배하여 아들을 왕태자로 책봉한 경사를 고하였다. 대릉은 산직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관리가 소활하여 위치를 잃어버려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남편인 문종의 경릉이 위치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릉 (戴陵)
대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1대 문종의 비 인예순덕태후의 왕후릉이다. 인예순덕태후가 1092년(선종 9) 9월 2일(임오)에 서경에서 세상을 떠나 개경으로 운구해 온 후 대릉에 장례를 지냈다. 1098년(숙종 3) 숙종이 대릉을 참배하여 아들을 왕태자로 책봉한 경사를 고하였다. 대릉은 산직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관리가 소활하여 위치를 잃어버려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남편인 문종의 경릉이 위치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