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성상업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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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택은 한말 저포상(苧布商)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초대 한일은행장과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한 실업가이다. 한말 조진태(趙鎭泰)·백완혁(白完爀) 등과 함께 재계 세 원로 중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1906년 설립된 한일은행(韓一銀行) 초대 은행장이었고, 1907부터 1910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했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중역, 한호농공은행 중역,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활동했다.
조병택 (趙秉澤)
조병택은 한말 저포상(苧布商)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초대 한일은행장과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한 실업가이다. 한말 조진태(趙鎭泰)·백완혁(白完爀) 등과 함께 재계 세 원로 중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1906년 설립된 한일은행(韓一銀行) 초대 은행장이었고, 1907부터 1910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했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중역, 한호농공은행 중역,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활동했다.
백완혁은 한말부터 일제시기에 걸쳐 활동한 친일기업인이다. 1881년 무과에 급제하여 군인으로 봉직하였으나, 갑오개혁 직후에 퇴직하고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일제 재정고문으로 들어온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화폐정리사업에 적극 협조하며 금융계의 거물로 성장하였다. 1906년부터 1918년까지 한호농공은행 은행장으로 재임하였다. 조진태(趙鎭泰), 조병택(趙秉澤)과 함께 ‘조선 실업계의 3원로’로 불렸다.
백완혁 (白完爀)
백완혁은 한말부터 일제시기에 걸쳐 활동한 친일기업인이다. 1881년 무과에 급제하여 군인으로 봉직하였으나, 갑오개혁 직후에 퇴직하고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일제 재정고문으로 들어온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화폐정리사업에 적극 협조하며 금융계의 거물로 성장하였다. 1906년부터 1918년까지 한호농공은행 은행장으로 재임하였다. 조진태(趙鎭泰), 조병택(趙秉澤)과 함께 ‘조선 실업계의 3원로’로 불렸다.
『조선경제잡지』는 1916년부터 1931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에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경성상업회의소는 1930년 11월 이후 경성상공회의소로 바뀌었는데, 이 단체가 기관지로 발간하였다.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가 경성의 중층 이상 자본가의 조직이었기 때문에 잡지의 구성과 내용은 조선은 물론 일본, 만주, 중국의 경제 동향 관련 논설, 자료, 통계 중심이었다. 이름이 확인되는 기명 기사의 필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기관지라는 성격을 반영해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의 주요 동향도 빠지지 않고 실렸다.
조선경제잡지 (朝鮮經濟雜誌)
『조선경제잡지』는 1916년부터 1931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에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경성상업회의소는 1930년 11월 이후 경성상공회의소로 바뀌었는데, 이 단체가 기관지로 발간하였다.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가 경성의 중층 이상 자본가의 조직이었기 때문에 잡지의 구성과 내용은 조선은 물론 일본, 만주, 중국의 경제 동향 관련 논설, 자료, 통계 중심이었다. 이름이 확인되는 기명 기사의 필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기관지라는 성격을 반영해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의 주요 동향도 빠지지 않고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