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제잡지』는 1916년부터 1931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에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경성상업회의소는 1930년 11월 이후 경성상공회의소로 바뀌었는데, 이 단체가 기관지로 발간하였다.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가 경성의 중층 이상 자본가의 조직이었기 때문에 잡지의 구성과 내용은 조선은 물론 일본, 만주, 중국의 경제 동향 관련 논설, 자료, 통계 중심이었다. 이름이 확인되는 기명 기사의 필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기관지라는 성격을 반영해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의 주요 동향도 빠지지 않고 실렸다.
1915년 2월 법정 단체로 인가를 받은 경성상업회의소의 주1로 1916년 1월에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의 제호는 『경성상업회의소월보(京城商業會議所月報)』였다. 1916년 7월의 제7호부터 『조선경제잡지』로 제호가 바뀌었다. 그 뒤에도 표지에는 ‘경성상업회의소월보 조선경제잡지’로 표기되었다.
경성상업회의소가 조선상업회의소령[제령4호]에 따라 조선인 상업회의소와 일본인 상업회의소를 통합해 새로 설립 인가를 받은 것은 1915년 12월이었다. 이로써 경성상업회의소는 이전의 임의단체에서 벗어나 강제력을 가진, 경성 상공업자의 유일한 법정 단체가 되었다. 조선인 · 일본인 상공업자의 통합 단체라고는 하지만 일본인 중층 이상의 상공업자가 중심이 된 단체로 사실상 조선인 상공업자의 참여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역대 회두[會頭 : 회장]는 모두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이 이사에 해당하는 의원 가운데 3/4 정도를 차지해 조선인 의원은 25%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조선경제잡지』의 구성과 내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성상업회의소월보』 창간호에는 조중응[趙重應 : 자작, 경성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과 송병준[宋秉畯 : 자작, 경성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 한상룡〔韓相龍 : 한성은행 전무, 경성상업회의소 평의원〕의 글이 일본인 요시하라 사부로〔吉原三郞 :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노다 우타로[野田卯太郞 :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 아오키 가이조〔靑木戒三 : 조선총독부 상공과장〕, 구기모토 도지로[釘本藤次郞 : 경성번영회 회장, 경성상업회의소 평의원]의 글과 나란히 실렸다. 형식적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진 구성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932년 1월에 나온 제193호까지 기명 필자 가운데 조선인은 김봉진[金鳳鎭 : 경상북도 청도군 읍내 거주], 한상룡[韓相龍 : 경성상업회의소 금융부장], 유전[劉銓 : 조선제사주식회사 전무, 경성상업회의소 평의원], 이재홍[李栽鴻: 경성상업회의소 조사과 서기], 이강현〔李康賢 : 경성방직주식회사 전무〕, 조병상[曺秉相 : 경성부 부협의회원, 국민협회 총무]의 6명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기명 필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특히 조병상의 글이 실린 제137호[1927년 5월] 이후 『경제월보』로 주2되기 직전인 제193호까지 조선인의 기명 기사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 기명 필자 가운데 가장 많은 기사를 쓴 것은 경성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이자 나중에는 회두[會頭 : 회장]가 되는 가다 나오지[賀田直治]로 모두 14번이나 목록에 이름이 등장한다. 다음은 8편의 글을 쓴 경성 사상[卸商=도매상]연맹 회장 미야바야시 다이지[宮林泰司]이다.
일반적인 지면 구성은 논설이나 강연 원고 등을 싣는 시사[나중에는 담총(談叢)] 및 자료, 주요 경제 현황을 다루는 조사, 잡록, 무역, 운수 통신, 교통, 참고 자료, 중요 경제 통계, 그리고 경성상업회의소[경성상공회의소]의 주요 활동을 소개하는 녹사(錄事) 등으로 이루어졌다.
1932년 2월의 제194호부터는 『경제월보』로 이름이 바뀌었다. 발행 겸 편집인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처음에는 시게마츠 덴지로[重松傳治郞]였고 나중에는 아카오 마사오[赤尾正夫]로 바뀌었다. 1930년 11월 경성상업회의소가 경성상공회의소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발행처도 경성상공회의소로 바뀌었다.
경성의 일본인 자본가가 중심이 된 법정 단체에서 발간된 경제 전문 잡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국익, 재조(在朝) 일본인 자본가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