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실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체육의 보급에 힘쓴 여성 체육 교육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2년
사망 연도
1993년
출생지
서울
주요 경력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한국여성체육학회 회장, 대한YWCA연합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대표 상훈
문화포장, 국민훈장 동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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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신실은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체육의 보급에 힘쓴 여성 체육 교육가이다.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에 입학하여 1926년 졸업하였다. 재학 중 오벌린대학의 자유주의적 학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여성 체육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930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 담당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장이 되었다. 여성 체육의 정립과 보급에 앞장선 한국 최초의 여성 체육 전문가이다. 대한적십자사, 대한YWCA연합회 등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체육의 보급에 힘쓴 여성 체육 교육가.
인적사항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

서울의 영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이화학당 보통과에 다니던 중 부모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에서는 이승만이 교장으로 있던 한인기독학원에서 공부하였다. 나중에 오하이오주로 옮겨 중학교를 다녔고, 1922년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에 입학해 교육학을 전공하고 1926년 졸업하였다.

오벌린대학은 미국 서부 지역의 성직자와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으로, 처음부터 남녀공학제를 채택하였다. 흑인에게도 입학 자격을 부여하였으며, 1838년부터는 여성에게도 학위를 수여하고 있었다. 오벌린대학의 자유주의적 학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여성 체육이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벌린대학에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들이 주최한 3·1절 기념식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2년 3월 1일의 3·1절 기념식에서 독창을 한 데 이어 1924년 3월 1일의 기념식에서도 주석을 맡고 독창을 하였다.

오벌린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모교인 한인기독학원의 교사가 되어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였다. 1928년 8월 9일 미국에서 열린 범태평양부인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였고, 1928년부터 1929년까지는 하와이 호놀롤루의 신흥국어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9년에는 하와이 무궁화구락부의 이사를 맡았다.

1930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 담당 교수로 부임하였다. 1935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처음으로 소프트볼을 도입하였고, 나중에는 야구단까지 만들었다. 1936년 5월 이화학당 창립 50주년 기념 연극 공연에서 현대 창작 무용과 군무를 지도하였다. 학교에 출근할 때 자전거를 이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여성 체육 전문가로서 활발한 강연과 언론 기고 활동을 통해 여성 체육의 중요성, 더 나아가 올바른 체육 사상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라디오 체조를 장려하자고 주장하였고, 야구, 정구, 포크댄스, 등산, 피크닉, 캠프 생활 등에 중점을 둘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1935년 3월 11일 자 『조선중앙일보』 체육부 신설 기념호에 여운형, 윤치호, 유억겸 등과 나란히 기고한 것이 눈길을 끈다. 「기술도 능한 동시 참다운 인격 필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술 방면으로 능한 동시에 참다운 인격의 소유자인 선수들을 양성”해야 하며, “운동 자체를 위한 운동에서 …… 기술과 정신이 아울러 발달하는 체육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36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재직 중 안식년을 이용해 다시 미국으로 갔으며, 다음 해 미시간대학에서 체육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38년 6월 8일 열린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위원회에서 일본기독교여자청년회와 통합 결의를 할 때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장이 되었다. 이후 1948년 대한여성체육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1954년 대한여성체육학회가 한국여성체육학회로 바뀐 뒤에도 제1대, 제2대 회장[1954~1955]을 역임하였고, 1956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1995년까지 명예회장을 맡았다.

1954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이사 및 위원이 되었고 1960년에는 대한YWCA연합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전국재해대책협의회 상무위원[1961], 대한적십자사 부총재[1962],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1964], 대한가족계획협회 부회장[1971] 등을 차례로 맡았다.

상훈과 추모

1961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 1962년 문화포장,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2년 YWCA 공로표창, 1972년 여성체육공로자 표창장, 1976년 대한적십자사 적십자 인도장 금장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원전

김신실, 「체육학교 설치를 건의함」(『춘추』, 춘추사, 1941. 6.)
김신실, 「기술도 능한 동시 참다운 인격 필요」(『조선중앙일보』, 1935. 3. 11.)
김신실, 「구미유학 십년간」(『삼천리』, 삼천리사, 1932. 1.)
『동아일보』
『신한민보』
『조선중앙일보』

단행본

김경일, 신영숙, 정현주, 이상경, 김성은, 김은경, 박정애, 『한국 근대 여성 63인의 초상』(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한국여성체육 100년 구술생애사 1』(100인의 여성체육인, 대경북스, 2015)

논문

이관영, 「김신실의 생애와 한국체육에 끼친 영향」(연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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