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앨리스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한 여성 음악가이자 교육자이다. 1914년에 이화학당 대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나가사키의 갓스이여자전문학교에서 3년 동안 음악을 공부하였다. 1923년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엘리슨 화이트 음악학교 정규 과정을 마쳤으며, 1925년에는 오리건대학에서 음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음악과를 만들고 음악 교육의 정착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근대적 여성상의 모범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1898년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광역시] 제물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애리시(金愛利時) · 김애식 · 정애식이다.
아버지가 인천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조지 존스(George Heber Jones)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서구 문물과 여성 교육에 눈을 떴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존스 선교사와 함께 선교 활동을 벌이던 감리교 여성 선교사 마가렛 벵겔(Margaret Bengel)이 여성 선교의 일환으로 인천에 세운 영화여학교(永化女學校)에 입학하였다. 이후 역시 감리교 여성 전도사인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이 세운 이화학당 중등과에 들어가 1909년 졸업하였다.
1910년 이화학당에 대학과가 개설되자, 첫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1회 졸업생이 되었으며, 그 후 이화학당 중등과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7년 이화학당 교장 룰루 프라이(Lulu E. Frey) 선교사의 주선으로 장학금을 받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 나가사키[長崎]의 개신교 계통 여성 고등 교육 기관인 갓스이여자전문학교[活水女子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며, 3년 동안 음악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다시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다가 연구년을 이용해 1921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25년으로 예정된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신설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는 1923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엘리슨 화이트 음악학교[Ellison-White Conservatory] 정규 과정을 마쳤다. 한국 여성 최초의 미국 음악 학교 졸업생이었다. 1925년에는 다시 오리건대학에서 음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음악과를 만들고 초대 과장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재미 동포 정일사(鄭日史, 鄭一史: 1881~1948)와 결혼하였다.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25년 동안 학생들에게 피아노, 음악 이론, 작곡법, 음악사, 청음, 시창, 음악 감상법 등을 가르치며 음악 교육의 정착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남편은 해방 이후 미군정청 전라북도지사, 이화여자대학교 교무처장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심장 질환으로 먼저 사망하였다. 김앨리스는 1950년 6·25전쟁 당시 피난을 가던 길에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육아 및 가사와 학교 일을 병행하는 근대적 여성상의 모범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1935년 이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15년 근속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