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선철도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함경북도 일대에 건설한 철도 노선을 일컫는 용어이다. 동해안 청진에서 출발해 함경선 분기점 수성을 거쳐 두만강 중류의 회령에 이른 뒤, 두만강변을 따라 북상해 조개선과 접속하는 상삼봉, 도문선과 연결되는 남양을 지나, 다시 두만강의 동쪽 하류를 따라 남하해 동만주철도가 분기하는 훈융 등을 거쳐 동해안 항구 웅기와 나진에 이른다. 동해안 북쪽에 위치한 청진, 웅기, 나진의 북선3항을 일본해 지역 항만 도시와 선박으로 연결하는 북선항로와 함께 북선루트의 핵심이었다.
일제주1는 만주사변[1931년][^2]과 주3 건립[1932년]을 거치면서 두만강 유역 일대를 대륙 침략을 위한 경제적 · 군사적 거점으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개발에 나섰다. 이를 위해서는 교통 시설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 일본과 만주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는 서해를 경유하는 황해 루트, 경부선 · 경의선을 잇는 한반도 주4 루트, 북선항로와 북선 철도를 통과하는 북선 루트가 있었다. 북선 루트는 만주철도북선철도북선 3항북선항로일본해 연안 일본 항구를 통해 일본과 만주를 가장 짧게 연결하는 간선 교통 노선으로 일제의 대륙 침략과 앞으로 예상되는 소련과의 전쟁을 위한 대동맥으로 여겨졌다. 일본 정부는 북선 루트 육성을 중시하였고, 조선총독부와 만주국도 여기에 적극 협력하였다. 1930년대 이후 만주국과 조선총독부가 함께 북선 철도 건설과 운영에 나선 데는 일제의 대외 팽창 정책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선철도를 일본 · 조선 · 만주를 하나로 묶는 국제 간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영의 일원화를 꾀하였다. 조선총독부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1933년 9월 조선총독부가 건설한 국유 철도의 일부를 만철에 위탁경영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만철이 1933년 10월 1일부터 20년 동안 북선철도를 경영하게 되었다. 이때 만철이 경영을 위탁 받은 선은 함경선의 수성(輸城)~회령(會寧), 도문선(圖們線), 청진선, 회령탄광선 등 합계 329㎞였다.
만철은 청진에 ‘북선철도관리국’을 설치하고 함경북도 일원의 북선철도를 직접 관리하였다. 만철은 1934년 3월부터 청진(淸津)과 웅기(雄基)에서 상삼봉(上三峰) 또는 남양(南陽)을 경유해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新京]에 이르는 직통 열차의 운전을 개시하였다. 1936년 4월부터는 나진(羅津)도문신징 사이의 직통 열차를 운행하였다. 만철은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는 형식으로 북선 3항도 무료로 경영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북선철도관리국은 1936년 10월 북선철도사무소로 바뀌었다. 북선철도사무소는 도문동부선과 웅라선을 합쳐 북선동부선, 도문서부선과 청진회령[함경선 북부]의 철도를 합쳐 북선서부선이라고 명명하고, 경도선[신징도문] · 조개선과 하나로 묶어 운영하였다. 북선철도사무소는 1937년 8월 나진으로 이전하고, 1941년 2월에는 나진철도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로써 만철의 주관 아래 일본조선만주를 잇는 북선 루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그에 따라 확보된 북선철도의 노선은 동해안의 항구 청진에서 출발하여 함경선의 분기점 수성을 거쳐 두만강 중류의 국경도시 회령에 이른 후, 두만강 가를 따라 북상하여 조개선[朝開線, 만주 차오양촨[朝陽川]~카이산둔[開山屯]을 잇는 노선]과 접속하는 상삼봉, 도문선과 연결되는 남양을 지나, 다시 두만강의 동쪽 하류를 따라 남하하여 동만주철도(東滿洲鐵道)가 분기하는 훈융(訓戎) 등을 거쳐 동해안의 항구 웅기와 나진에 이르는 것이었다. 동해안 북쪽에 위치한 청진, 웅기, 나진의 북선 3항을 일본해 지역 항만 도시와 선박으로 연결하는 북선항로와 함께 북선루트의 핵심이었다.
그 후 만철은 조선총독부의 요구에 따라 1940년 3월 북선서부선의 상삼봉청진, 회령탄광선(회령신계림), 청진항 등의 경영을 조선총독부에 돌려주었다. 그리하여 북선철도는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조선총독부와 만철이 나누어 운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