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공산청년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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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
이정윤 (李廷允)
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최익한 (崔益翰)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항일군정대학 교관, 화북조선독립동맹 부주석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부수상 등을 역임하다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관료·독립운동가.
최창익 (崔昌益)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항일군정대학 교관, 화북조선독립동맹 부주석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부수상 등을 역임하다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관료·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