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_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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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
왕건 동상 (王建 銅像)
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에 고려의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
숭의전 (崇義殿)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에 고려의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린 공신호.
삼한공신 (三韓功臣)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린 공신호.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칠대실록 (七代實錄)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승로 (崔承老)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고려 전기에, 대광, 마군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배현경 (裵玄慶)
고려 전기에, 대광, 마군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현릉 (顯陵)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복지겸 (卜智謙)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 북쪽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관륵과 강운이 창건한 사찰.
금강산 정양사 (表訓寺 正陽寺)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 북쪽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관륵과 강운이 창건한 사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개성 광명사 (開城 廣明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탄현문 밖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개성 개국사 (開城 開國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탄현문 밖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 수미산(須彌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수미산 광조사 (須彌山 廣照寺)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 수미산(須彌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민합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처음으로 파견하였던 사신이다. 왕건이 918년 6월에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견훤은 2개월 뒤인 8월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합을 파견하였다. 이때 고려 태조는 광평시랑 한신일을 감미현까지 보내어 민합을 영접하게 하였고, 자신도 대중전에 임어하여 직접 그의 축하를 받는 등 두터운 예로써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민합 (閔郃)
민합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처음으로 파견하였던 사신이다. 왕건이 918년 6월에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견훤은 2개월 뒤인 8월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합을 파견하였다. 이때 고려 태조는 광평시랑 한신일을 감미현까지 보내어 민합을 영접하게 하였고, 자신도 대중전에 임어하여 직접 그의 축하를 받는 등 두터운 예로써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태조의 명으로 창건된 사찰.
송악산 건성사 (松嶽山 乾聖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태조의 명으로 창건된 사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성안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개성 미륵사 (開城 彌勒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성안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유금필 (庾黔弼)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충담은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선승이다. 신라 말기 무주에서 활동하다가 입당구법(入唐求法)하여 귀국한 승려로, 고려 개국 후 개경으로 이동하여 태조의 공경을 받았다. 그는 고려시대 왕사로 임명된 첫 사례이며 이후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태조가 직접 그의 비문을 찬술하였다.
충담 (忠湛)
충담은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선승이다. 신라 말기 무주에서 활동하다가 입당구법(入唐求法)하여 귀국한 승려로, 고려 개국 후 개경으로 이동하여 태조의 공경을 받았다. 그는 고려시대 왕사로 임명된 첫 사례이며 이후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태조가 직접 그의 비문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