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적"
검색결과 총 11건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진 궁궐건물. 전각.
경복궁 교태전 (景福宮 交泰殿)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진 궁궐건물. 전각.
송나라의 수학자 양휘가 저술해 조선의 방정식 해법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 수학서.
양휘산법 (揚輝算法)
송나라의 수학자 양휘가 저술해 조선의 방정식 해법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 수학서.
해방 이후 「동양의 풍경」, 「허물어진 제단」, 「역사의 흔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남관 (南寬)
해방 이후 「동양의 풍경」, 「허물어진 제단」, 「역사의 흔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 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진주 옥봉 고분군 (晉州 玉峰 古墳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 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김흥경은 고려 후기 무관으로 활약하였던 공민왕의 총신(寵臣)이다. 수려한 용모로 인해 공민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제위(子弟衛)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홍륜 등의 공민왕 살해 음모를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사형에 처해졌다.
김흥경 (金興慶)
김흥경은 고려 후기 무관으로 활약하였던 공민왕의 총신(寵臣)이다. 수려한 용모로 인해 공민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제위(子弟衛)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홍륜 등의 공민왕 살해 음모를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사형에 처해졌다.
충청북도 충주시 단호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탑.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忠州 丹湖寺 三層石塔)
충청북도 충주시 단호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탑.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조선전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 관련 집터. 유허비.
성삼문 선생 유허지 (成三問 先生 遺墟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조선전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 관련 집터. 유허비.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화엄경고적기 (華嚴經古迹記)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고려전기 청도군태수를 역임한 관리.
이사로 (李思老)
고려전기 청도군태수를 역임한 관리.
장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장릉리 일대에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7대 인종의 능이다. 인종은 1146년(인종 24) 2월 정묘일에 보화전에서 승하하고 3월 갑신일에 나성 남쪽에 장례 지냈다. 후에 제18대 의종, 제19대 명종, 제20대 신종이 참배한 적이 있다. 장릉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도성의 서쪽인 벽관동에,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장릉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제16대 예종 유릉이나 제20대 신종 양릉 등이 있고, 양식이 유사하다고 여겨지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장릉 (長陵)
장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장릉리 일대에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7대 인종의 능이다. 인종은 1146년(인종 24) 2월 정묘일에 보화전에서 승하하고 3월 갑신일에 나성 남쪽에 장례 지냈다. 후에 제18대 의종, 제19대 명종, 제20대 신종이 참배한 적이 있다. 장릉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도성의 서쪽인 벽관동에,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장릉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제16대 예종 유릉이나 제20대 신종 양릉 등이 있고, 양식이 유사하다고 여겨지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촬영한 유리로 만든 음화이다. 총 38,000여장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보관하던 것을 광복 후 인수한 것이다. 유리건판은 사진 발명 후 초창기에 사용된 사진 감광판으로, 유리판 위에 감광 유제를 바른 형태의 사진 필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은 대체로 1909년부터 1945년경까지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민속,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琉璃乾板)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촬영한 유리로 만든 음화이다. 총 38,000여장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보관하던 것을 광복 후 인수한 것이다. 유리건판은 사진 발명 후 초창기에 사용된 사진 감광판으로, 유리판 위에 감광 유제를 바른 형태의 사진 필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은 대체로 1909년부터 1945년경까지 일제가 식민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민속,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