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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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증해(家禮增解)』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조가 『가례』에 실려 있지 않은 변례(變禮)를 채록하여 증보하고 『가례』에 제시된 명물 도수의 의미를 고례(古禮)에 근거하여 해설한 예서이다. 이와 함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시행할 때 필요한 인원과 기물을 『가례의절』과 『상례비요』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행례시에 참조하기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점에서 본서는 행례와 고증 그리고 변례와 관련하여 조선에서 진행된 민간 의례 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서 위상을 가진다.
가례증해 (家禮增解)
『가례증해(家禮增解)』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조가 『가례』에 실려 있지 않은 변례(變禮)를 채록하여 증보하고 『가례』에 제시된 명물 도수의 의미를 고례(古禮)에 근거하여 해설한 예서이다. 이와 함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시행할 때 필요한 인원과 기물을 『가례의절』과 『상례비요』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행례시에 참조하기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점에서 본서는 행례와 고증 그리고 변례와 관련하여 조선에서 진행된 민간 의례 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서 위상을 가진다.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홍여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93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재문집 (木齋文集)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홍여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93년에 간행한 시문집.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발해강역고 (渤海疆域考)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성일 (金誠一)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개항기 돈녕부도사, 공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윤종의 (尹宗儀)
개항기 돈녕부도사, 공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시대 안주목사, 성천부사,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호익 (曺好益)
조선시대 안주목사, 성천부사,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