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관아"
검색결과 총 10건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거제현 관아 (巨濟縣 官衙)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면에 있는 조선시대 서남 연해지방을 관할하던 관청.
위도 관아 (蝟島 官衙)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면에 있는 조선시대 서남 연해지방을 관할하던 관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있는 조선후기 외삼문·내삼문·내동헌·외동헌으로 구성된 관청.
직산현 관아 (稷山縣 官衙)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있는 조선후기 외삼문·내삼문·내동헌·외동헌으로 구성된 관청.
영월부 관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이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는 객사 건물 3동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
영월부 관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이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는 객사 건물 3동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홍산현의 객사와 동헌 등의 관청.
부여 홍산현 관아 (扶餘 鴻山縣 官衙)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홍산현의 객사와 동헌 등의 관청.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조선후기 수령·좌수·육방 등이 공무를 보던 관청.
고흥 존심당 및 아문 (高興 存心堂 및 衙門)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조선후기 수령·좌수·육방 등이 공무를 보던 관청.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청사로 사용된 관청.
괴산동헌 (槐山東軒)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청사로 사용된 관청.
보은집회는 1893년 3월과 4월 동학교도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척왜양(斥倭洋)’을 내걸고 충청북도 보은에서 개최한 집회이다.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한 광화문 복합상소가 실패한 후에 척왜양의 기치를 내걸고 개최한 집회이다. 전국에서 1만 내지 2만 명 정도의 교도가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에서 동학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여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반면에 관군과 무력 충돌을 우려한 동학지도부는 평화적인 노선을 선택하여 해산을 결정하였다. 동학의 현실대항적 능력을 한 단계 높여서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보은집회 (報恩集會)
보은집회는 1893년 3월과 4월 동학교도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척왜양(斥倭洋)’을 내걸고 충청북도 보은에서 개최한 집회이다.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한 광화문 복합상소가 실패한 후에 척왜양의 기치를 내걸고 개최한 집회이다. 전국에서 1만 내지 2만 명 정도의 교도가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에서 동학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여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반면에 관군과 무력 충돌을 우려한 동학지도부는 평화적인 노선을 선택하여 해산을 결정하였다. 동학의 현실대항적 능력을 한 단계 높여서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사제첩은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이 그린 화첩이다. 화가가 50대에 제작한 작품들을 그의 아들이 모아서 만들었다. 일상적 풍경을 그린 15점이 들어 있는데 풍속화·영모화·초충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가 다양하며 작품의 수준도 일정치 않다. 화첩 표지 왼쪽에 사향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의 ‘사제’라는 표제가 있다. 발문은 이병연(1671∼1751)이 썼다. 화첩 수록 그림 중 「새참」과 「목기 깍기」 등의 풍속화가 특히 주목된다. 18세기 전반의 작화 방법 및 풍속화가의 서민 삶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사제첩 (麝臍帖)
사제첩은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이 그린 화첩이다. 화가가 50대에 제작한 작품들을 그의 아들이 모아서 만들었다. 일상적 풍경을 그린 15점이 들어 있는데 풍속화·영모화·초충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가 다양하며 작품의 수준도 일정치 않다. 화첩 표지 왼쪽에 사향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의 ‘사제’라는 표제가 있다. 발문은 이병연(1671∼1751)이 썼다. 화첩 수록 그림 중 「새참」과 「목기 깍기」 등의 풍속화가 특히 주목된다. 18세기 전반의 작화 방법 및 풍속화가의 서민 삶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조선후기 청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
청주 청녕각 (淸州 淸寧閣)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조선후기 청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