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교서"
검색결과 총 24건
1467년 무신 김교(1428~1480)를 적개공신 1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김교 적개공신교서 (金嶠 敵愾功臣敎書)
1467년 무신 김교(1428~1480)를 적개공신 1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 (金吉通 佐理功臣敎書)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467년 문신 장말손을 적개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장말손 적개공신교서 (張末孫 敵愾功臣敎書)
1467년 문신 장말손을 적개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607년 문신 심대를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심대 호성공신교서 (沈岱 扈聖功臣敎書)
1607년 문신 심대를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651년 문신 이원익에게 종묘의 인조묘정에 배향을 제수한 교서. 배향교서.
이원익 인조 묘정 배향교서 (李元翼 仁祖 廟廷 配享敎書)
1651년 문신 이원익에게 종묘의 인조묘정에 배향을 제수한 교서. 배향교서.
1604년 문신 박동량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박동량 호성공신교서 (朴東亮 扈聖功臣敎書)
1604년 문신 박동량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신여량 상가교서」는 1604년(선조 37) 선조가 신여량에게 내린 교서이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신여량에게 1604년 가자(加資)로 포상하면서 내려준 교서이다. 전쟁에서의 공로를 평가하여 발급한 것으로, 수취자 생전에 발급한 교서이다. 17세기에 내려진 국왕의 교서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신여량 상가교서 (申汝樑 賞加敎書)
「신여량 상가교서」는 1604년(선조 37) 선조가 신여량에게 내린 교서이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신여량에게 1604년 가자(加資)로 포상하면서 내려준 교서이다. 전쟁에서의 공로를 평가하여 발급한 것으로, 수취자 생전에 발급한 교서이다. 17세기에 내려진 국왕의 교서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이숙기 좌리공신교서는 1472년(성종 3) 성종이 좌리공신 이숙기에게 내린 교서이다. 성종 즉위를 보필한 공로로 4등 좌리공신에 선정된 이숙기에게 발급된 문서이다. 발급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15세기 공신 교서의 특징이나 서체, 제작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숙기 좌리공신교서 (李淑琦 佐理功臣敎書)
이숙기 좌리공신교서는 1472년(성종 3) 성종이 좌리공신 이숙기에게 내린 교서이다. 성종 즉위를 보필한 공로로 4등 좌리공신에 선정된 이숙기에게 발급된 문서이다. 발급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15세기 공신 교서의 특징이나 서체, 제작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교서초 (敎書抄)
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에 있는 조선 초기 태종대에 김영렬에게 내린 공신교서 및 회맹록.
김영렬 좌명공신교서 및 회맹록 (金英烈 佐命功臣敎書 및 會盟錄)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에 있는 조선 초기 태종대에 김영렬에게 내린 공신교서 및 회맹록.
조선 중기 문신 김응남에게 1604년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에 내려진 증시교지.
김응남 호성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 (金應南 扈聖功臣敎書 및 關聯 古文書)
조선 중기 문신 김응남에게 1604년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에 내려진 증시교지.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이중로를 정사공신 2등에 녹훈하고 내려준 공신교서와 공신 초상화이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25년에 내려진 교서와 초상으로, 교서는 세로 39.5㎝, 가로 263.1㎝이며, 초상화는 세로 169㎝, 가로 94㎝이다. 교서는 두루마리 형태이며 저지 바탕에 생견으로 배접하였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소매 안에 손을 맞잡고 앉은 모습으로 얼굴은 약간 반측면으로 그렸다. 교서는 정사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초상은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李重老 靖社功臣敎書 및 肖像)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이중로를 정사공신 2등에 녹훈하고 내려준 공신교서와 공신 초상화이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25년에 내려진 교서와 초상으로, 교서는 세로 39.5㎝, 가로 263.1㎝이며, 초상화는 세로 169㎝, 가로 94㎝이다. 교서는 두루마리 형태이며 저지 바탕에 생견으로 배접하였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소매 안에 손을 맞잡고 앉은 모습으로 얼굴은 약간 반측면으로 그렸다. 교서는 정사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초상은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이다. 이공기는 선조 연간에 어의를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공신 교서를 받고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교서에는 이공기를 포함 호성공신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었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좌안칠분면의 전신좌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의관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 (李公沂 扈聖功臣敎書 및 肖像)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이다. 이공기는 선조 연간에 어의를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공신 교서를 받고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교서에는 이공기를 포함 호성공신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었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좌안칠분면의 전신좌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의관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 및 초상은 1613년(광해군 5)에 한천두가 위성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수여받은 교서와 초상화이다.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위성공신의 내용과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광해군 대의 희귀한 교서이다. 「한천두 초상」은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었고 뛰어난 표현기법을 보여주는데,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2017년 8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한천두 위성공신교서 및 초상 (韓天斗 衛星功臣敎書 및 肖像)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 및 초상은 1613년(광해군 5)에 한천두가 위성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수여받은 교서와 초상화이다.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위성공신의 내용과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광해군 대의 희귀한 교서이다. 「한천두 초상」은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었고 뛰어난 표현기법을 보여주는데,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2017년 8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 (南以興 將軍 一家 遺品)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김양보 호성공신록 (金良輔 扈聖功臣錄)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고려·조선시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왕명을 받아 각 공신에게 발급한,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
녹권 (錄券)
고려·조선시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왕명을 받아 각 공신에게 발급한,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
조선전기 무신 이전생의 종손가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 (梁山李氏 宗家 古文書)
조선전기 무신 이전생의 종손가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
조선시대 왕세자가 내리는 훈유(訓諭)·명령서.
영서 (令書)
조선시대 왕세자가 내리는 훈유(訓諭)·명령서.
조선시대 왕에게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담당한 관직.
외지제교 (外知製敎)
조선시대 왕에게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담당한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