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군사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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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5·16 (五一六)
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961년 6월 10일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을 공포하여 농어촌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 하였던 사업.
농어촌 고리채 및 정리사업 (農漁村 高利債 및 整理事業)
1961년 6월 10일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을 공포하여 농어촌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 하였던 사업.
남아메리카 남서부에 있는 공화국.
칠레 (Chile)
남아메리카 남서부에 있는 공화국.
영화윤리전국위원회는 1960년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자율 영화 심의기구이다. 영화에 대한 정부 기관의 검열을 민간 자율 심의로 대체하기 위하여 영화계와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주요한 기능은 영화 개봉 전 사전 심의였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자의적 검열 대신 좀 더 유연한 규정을 만들고 포스터나 신문 광고 등에도 제약 규정을 마련해 포괄적인 심의를 행하였다. 그 덕분에 검열 체제에서는 불가능했을 『오발탄』(1961) 등의 수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해체되었다.
영화윤리전국위원회 (映畵倫理全國委員會)
영화윤리전국위원회는 1960년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자율 영화 심의기구이다. 영화에 대한 정부 기관의 검열을 민간 자율 심의로 대체하기 위하여 영화계와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주요한 기능은 영화 개봉 전 사전 심의였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자의적 검열 대신 좀 더 유연한 규정을 만들고 포스터나 신문 광고 등에도 제약 규정을 마련해 포괄적인 심의를 행하였다. 그 덕분에 검열 체제에서는 불가능했을 『오발탄』(1961) 등의 수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해체되었다.
혁명검찰부는 5·16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되었던 특별 검찰기관이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22조에 따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국가적·반민족적 부정행위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하였다. 3·15부정선거 사건, 7·29선거난동 사건, 특수 반국가 행위, 반혁명 사건, 폭력 행위 사건, 특수 밀수 사건, 국사 및 군사에 관한 독직 사건, 부정 축재 사건 등이 주요 처벌 대상이었다.
혁명검찰부 (革命檢察部)
혁명검찰부는 5·16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되었던 특별 검찰기관이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22조에 따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국가적·반민족적 부정행위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하였다. 3·15부정선거 사건, 7·29선거난동 사건, 특수 반국가 행위, 반혁명 사건, 폭력 행위 사건, 특수 밀수 사건, 국사 및 군사에 관한 독직 사건, 부정 축재 사건 등이 주요 처벌 대상이었다.
강영훈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소위, 대한민국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동원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었고, 1961년 9월 강제 예편당하였다. 1988년 국무총리에 취임하였고, 1990년 남북총리회담을 이끌었다.
강영훈 (姜英勳)
강영훈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소위, 대한민국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동원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었고, 1961년 9월 강제 예편당하였다. 1988년 국무총리에 취임하였고, 1990년 남북총리회담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