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귀부이수"
검색결과 총 3건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이다. 1409년에 조선 시대 왕릉에 최초로 건립된 것으로, 201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태조의 탁월한 무공과 정치력에 대해 서술한 권근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신도비는 화려하고 장엄한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용의 형상을 새긴 비석 머릿돌 양식을 갖추고 있다. 현존 왕릉 신도비 중 유일하게 건립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초기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 (九里 太祖 健元陵 神道碑)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이다. 1409년에 조선 시대 왕릉에 최초로 건립된 것으로, 201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태조의 탁월한 무공과 정치력에 대해 서술한 권근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신도비는 화려하고 장엄한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용의 형상을 새긴 비석 머릿돌 양식을 갖추고 있다. 현존 왕릉 신도비 중 유일하게 건립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초기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에 있는 조선전기 태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신도비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424년(세종 6)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가 합쳐진 귀부이수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건원릉 신도비의 장대한 귀수이부 양식과 규모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였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어 1695년(숙종 21)에 귀부이수 양식을 갖춘 신도비를 별도로 중건하였다. 이 신도비는 왕릉 신도비의 전통을 계승한 신도비이자 이후 건립되는 세종대왕 영릉 신도비의 앞선 사례로 주목된다.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에 있는 조선전기 태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신도비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424년(세종 6)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가 합쳐진 귀부이수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건원릉 신도비의 장대한 귀수이부 양식과 규모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였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어 1695년(숙종 21)에 귀부이수 양식을 갖춘 신도비를 별도로 중건하였다. 이 신도비는 왕릉 신도비의 전통을 계승한 신도비이자 이후 건립되는 세종대왕 영릉 신도비의 앞선 사례로 주목된다.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영릉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 재위 기간의 주요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이다. 1452년에 건립하였는데 정인지와 김조가 각각 비문과 비음기를 짓고 안평대군이 글씨와 전액을 썼다. 비문은 세종 재위 기간의 주요 업적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였고 비음기 전문은 남아 있지 않다. 1469년에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신도비는 땅에 묻었다. 1974년에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비신과 이수를 발굴하여 옮겨 세웠다. 조선시대의 고유한 양식이 반영된 최초의 왕릉신도비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世宗 英陵 神道碑)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영릉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 재위 기간의 주요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이다. 1452년에 건립하였는데 정인지와 김조가 각각 비문과 비음기를 짓고 안평대군이 글씨와 전액을 썼다. 비문은 세종 재위 기간의 주요 업적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였고 비음기 전문은 남아 있지 않다. 1469년에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신도비는 땅에 묻었다. 1974년에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비신과 이수를 발굴하여 옮겨 세웠다. 조선시대의 고유한 양식이 반영된 최초의 왕릉신도비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