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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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金烏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충신 길재가 은거한 곳으로 알려진 사찰.
금오산 대혈사 (金烏山 大穴寺)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金烏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충신 길재가 은거한 곳으로 알려진 사찰.
금오서원은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원사 중의 하나이다. 1567년 길재를 제향하는 서원 건립의 허가를 받아서 1572년 묘우를 완성하고, 1575년 사액을 받았다. 당시 김종직, 정붕, 박영을 병향하였다. 1602년 중건하면서 남산서원이라 칭하고, 1609년에 재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642년 사림의 공의로 장현광을 추향하였다.
금오서원 (金烏書院)
금오서원은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원사 중의 하나이다. 1567년 길재를 제향하는 서원 건립의 허가를 받아서 1572년 묘우를 완성하고, 1575년 사액을 받았다. 당시 김종직, 정붕, 박영을 병향하였다. 1602년 중건하면서 남산서원이라 칭하고, 1609년에 재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642년 사림의 공의로 장현광을 추향하였다.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31년(세종 13)에 태어나 1492년(성종 23)에 사망했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정의를 숭상하고, 시비를 분명히 밝히려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문장에 뛰어나 『점필재집(佔畢齋集)』을 비롯한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다.
김종직 (金宗直)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31년(세종 13)에 태어나 1492년(성종 23)에 사망했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정의를 숭상하고, 시비를 분명히 밝히려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문장에 뛰어나 『점필재집(佔畢齋集)』을 비롯한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다.
조선 전기에, 지사간, 김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치 (金峙)
조선 전기에, 지사간, 김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의 학자, 조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6년에 간행한 시문집.
구봉유집 (九峯遺集)
조선 후기의 학자, 조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6년에 간행한 시문집.
고려 후기에 활동했던, 아호에 은(隱)자가 붙은 9인의 문신들.
구은 (九隱)
고려 후기에 활동했던, 아호에 은(隱)자가 붙은 9인의 문신들.
고려후기 참지문하부사, 사천백 등을 역임한 문신. 충신.
남을진 (南乙珍)
고려후기 참지문하부사, 사천백 등을 역임한 문신. 충신.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
삼은 (三隱)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이색 (李穡)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포은 정몽주 등의 시를 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말년인 80세에서 87세(1626∼1633) 사이에 손자와 손녀를 위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의 시문집에서 한시를 가려 뽑아 초서로 써서 남겼다. 포은의 시 9점과 야은 시 1점,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3점 등 모두 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문 사대부가의 가학 정신을 살필 수 있다.
광명 이원익 친필 유묵 (光明 李元翼 親筆 遺墨)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포은 정몽주 등의 시를 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말년인 80세에서 87세(1626∼1633) 사이에 손자와 손녀를 위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의 시문집에서 한시를 가려 뽑아 초서로 써서 남겼다. 포은의 시 9점과 야은 시 1점,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3점 등 모두 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문 사대부가의 가학 정신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좌정언, 집현전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상치 (曺尙治)
조선 전기에, 좌정언, 집현전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초기에 길재(吉再)가 지은 시조.
회고가 (懷古歌)
조선 초기에 길재(吉再)가 지은 시조.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이명신이 건립한 누정.
화석정 (花石亭)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이명신이 건립한 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