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初翼工)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였다.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명신의 증손인 이이(李珥)가 중수하여 퇴관(退官) 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시를 지으며 학문을 논하고 이(理)를 구(究)하니,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정자를 찾아와 음시(吟詩), 청유(淸遊)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장단(長湍) 쪽을 향하였는데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五冠山)이 아득하게 보인다. 정자 안에는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숙함의 정기(亭記)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서(別墅)인 평천장(平泉莊)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화석(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 있었다가 그 뒤 이이의 후손들이 1673년(현종 14) 중건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된 것을 1966년 파주(坡州) 유림(儒林)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였다.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申師任堂)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