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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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영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8년에 간행한 시문집.
단구유고 (丹邱遺稿)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영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8년에 간행한 시문집.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박용만 (朴容萬)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동영 (金東英)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국립4·19민주묘지 (國立四一九民主墓地)
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1958년 김영삼이 제주도 민요 중 118편을 선별하여 기능·창자·내용 등의 기준을 통해 분류·편찬한 민요집. 가록류·제주민요채록집.
제주민요집 (濟州民謠集)
1958년 김영삼이 제주도 민요 중 118편을 선별하여 기능·창자·내용 등의 기준을 통해 분류·편찬한 민요집. 가록류·제주민요채록집.
김윤환은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 문화공보부 차관, 국회의원, 정무장관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1932년 경북 선산군 출생으로 미국 오하오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다. 조선일보 주일, 주미 특파원을 거쳐 편집국 국장 대리로 활동하였다. 제10·11·13·14·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및 사무총장, 대표위원을 지냈으며, 초대 신한국당의 대표위원, 상임고문에 임명되었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직,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직을 맡았다. 2003년 사망하였다.
김윤환 (金潤煥)
김윤환은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 문화공보부 차관, 국회의원, 정무장관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1932년 경북 선산군 출생으로 미국 오하오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다. 조선일보 주일, 주미 특파원을 거쳐 편집국 국장 대리로 활동하였다. 제10·11·13·14·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및 사무총장, 대표위원을 지냈으며, 초대 신한국당의 대표위원, 상임고문에 임명되었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직,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직을 맡았다. 2003년 사망하였다.
1971년 신민당 김영삼 의원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나설 것을 선언하며 내세운 논리.
사십대기수론 (四十代旗手論)
1971년 신민당 김영삼 의원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나설 것을 선언하며 내세운 논리.
1984년 5월에 결성된 재야 정치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체.
민주화추진협의회 (民主化推進協議會)
1984년 5월에 결성된 재야 정치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체.
5·18 특별법은 1995년 12월 19일에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12 · 12군사반란 및 5 · 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이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이어져온 5·18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따라 1988년부터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관련 청문회가 진행되었으며, 1993년 김영삼 정부 등장 후부터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면서 1995년 12월에 5·18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5·18특별법 (五一八特別法)
5·18 특별법은 1995년 12월 19일에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12 · 12군사반란 및 5 · 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이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이어져온 5·18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따라 1988년부터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관련 청문회가 진행되었으며, 1993년 김영삼 정부 등장 후부터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면서 1995년 12월에 5·18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문민정부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명명된 정부 명칭이다. 군부 출신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민간 정치인이 집권한 정부를 의미한다. 문민정부는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를 확립해 독재로 회귀할 가능성을 없앴고,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추진했으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등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아이엠에프(IMF) 외환 위기를 불러온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문민정부 (文民政府)
문민정부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명명된 정부 명칭이다. 군부 출신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민간 정치인이 집권한 정부를 의미한다. 문민정부는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를 확립해 독재로 회귀할 가능성을 없앴고,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추진했으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등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아이엠에프(IMF) 외환 위기를 불러온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역사바로세우기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친일 및 군사 독재의 잔재 청산 정책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제강점기 잔재의 청산, 군내 하나회 청산 등 군사 독재의 청산 등을 추진하였던 문민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역사바로세우기 (歷史바로세우기)
역사바로세우기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친일 및 군사 독재의 잔재 청산 정책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제강점기 잔재의 청산, 군내 하나회 청산 등 군사 독재의 청산 등을 추진하였던 문민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3당합당은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된 사건이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과거 5·16세력이었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신군부세력이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을 만들게 된 사건을 말한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내에서 민주계의 김영삼이 대권을 잡아 문민정부가 탄생하게 되고, 이후 ‘하나회 척결’을 통해 정치군인들을 제거함으로써, 김영삼 정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당합당 (三黨合黨)
3당합당은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된 사건이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과거 5·16세력이었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신군부세력이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을 만들게 된 사건을 말한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내에서 민주계의 김영삼이 대권을 잡아 문민정부가 탄생하게 되고, 이후 ‘하나회 척결’을 통해 정치군인들을 제거함으로써, 김영삼 정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산테러사건은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이다. 김영삼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추진 움직임을 제2의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고, 초산테러를 당한 후 김영삼과 야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초산테러사건 (硝酸―事件)
초산테러사건은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이다. 김영삼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추진 움직임을 제2의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고, 초산테러를 당한 후 김영삼과 야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