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
사건/사건·사고
발생 시기
1969년 6월 20일
종결 시기
1969년 6월 20일
발생 원인
삼선개헌반대운동
발생 장소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관련 단체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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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초산테러사건은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이다. 김영삼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추진 움직임을 제2의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고, 초산테러를 당한 후 김영삼과 야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
발단
1967년 6월 8일 제7대 총선에서 개헌선을 확보한 공화당은 1968년 말부터 제3공화국 헌법 제69조 3항〔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의 개정을 목표로 한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야당 신민당과 재야의 정치 세력, 대학 학생운동 세력은 개헌 반대 투쟁에 나섰다. 1969년 6월 13일, 김영삼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 삼선개헌 음모는 제2의 주1다 …… 이 개헌 음모에 대해서도 제일 중요하게 깊이 간여하는 곳이 중앙정보부다 ……”라며 개헌 움직임을 강하게 주2
경과 및 결과
1969년 6월 20일 밤 10시 무렵, 김영삼이 유진오 신민당 총재 등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자택 근처에서 괴한 3명이 김영삼이 탄 차를 향해 초산병을 투척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김영삼은 이 사건을 자신의 6월 13일 발언에 대한 보복이자 살인적인 정치 주3라고 주장하였고, 유진산 의원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주4정일권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 관계자들은 유감을 표명하고, 범인 체포와 진상규명을 약속했으나 끝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영향
이 사건으로 여야의 갈등은 더 깊어졌고, 직후 신민당이 부산에서 연 3선개헌 저지 시국강연회에 5만 명의 청중이 운집하는 등 범국민적 3선개헌 반대 투쟁도 한층 더 격화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삼선개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개헌안은 국민투표법과 함께 1969년 9월 14일, 여당 단독 날치기로 통과되었고, 같은 해 10월 17일 국민투표에서 77.1% 투표율과 65.1% 찬성률로 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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