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지역 행정구호 ( )

현대사
제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점령 지역 주민들의 식량 결핍과 질병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식료품 · 의약품 · 의류 등 소비재 긴급 구호물자를 지원했던 구호 성격의 원조.
이칭
이칭
GARIOA(Government and Relief in Occupied Area) 원조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1945년 9월
폐지 시기
1948년 12월
시행처
미국 전쟁부(Department of War)
주관 부서
미군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점령지역 행정구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점령 지역 주민들의 식량 결핍과 질병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식료품·의약품·의류 등 소비재 긴급 구호물자를 지원했던 구호 성격의 원조이다. 일명 GARIOA[Government and Relief in Occupied Area] 원조로 불리기도 했는데, 미국 전쟁부의 예산을 재원으로 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에 공여되었고, 해방 후 미군정기 한국에도 일부 공여되었다.

정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점령 지역 주민들의 식량 결핍과 질병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식료품 · 의약품 · 의류 등 소비재 긴급 구호물자를 지원했던 구호 성격의 원조.
공여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명실상부 세계 최강국 지위를 굳힌 미국은 막강한 산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대외원조를 대외정책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전후 주1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의 대외원조는 1947년 3월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의 이른바 트루먼 주2에서 잘 드러났듯, 소련에 맞서 주3를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미국은 점령 지역에서 연합국 구제부흥기관[United Nations Relief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 UNRA][^4] 주5, 점령지역 경제부흥[Economic Rehabilitation in Occupied Area, EROA][^6] 원조 등을 실시했는데, 점령지역 행정구호[Government and Relief in Occupied Area, GARIOA] 원조도 그 중의 하나였다. GARIOA 원조는 미국 전쟁부[Department of War] 예산을 재원으로 하여 독일 · 오스트리아 · 일본 등에 공여되었고, 해방미군정기 한국에도 일부 공여되었다.

내용

해방 후 한국은 미소의 38선 분할 점령과 주7 경제권’의 붕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식민지기 해외 이주 동포의 귀환 등으로 식량 · 의류 · 보건 · 주택 등 각종 사회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정이 진주한 1945년 9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한국에도 점령지역 행정구호 원조가 공여되었다. 이 원조는 주민들의 식량 결핍과 보건 · 위생 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한 소비재 원조로서 점령 지역의 경제 복구 또는 부흥을 위해 철광석 · 중유 · 건축자재 등 주로 원자재를 공여한 EROA 원조와는 구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인 1948년 12월 10일, 한미 당국이 한미원조협정을 체결하면서 그전까지 미군정에 의해 공여된 점령지역 행정구호 원조는 종료되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이 기간 GARIOA 원조 총액은 약 4억 1천만 달러에 주8

의의 및 평가

GARIOA 원조가 종료된 이후 미국의 대한원조는 경제협조처[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 ECA] 원조로 바뀌었다. 단 ECA 원조는 마셜 플랜(Marshall Plan)으로 잘 알려진 유럽‘부흥’계획 수행을 주요한 목표로 하였으나 한국에서의 원조는 기존 점령지역 행정‘구호’ 원조의 성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GARIOA 원조는 해방 후 기초적인 생필품 부족 현상을 완화하고 악성 인플레를 진정시킴으로써 해방 3년간 한국의 정치경제 · 사회적 안정에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현진,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정책: 1948~1960』(혜안, 2009)
이대근, 『해방 후 1950년대의 경제』(삼성경제연구소, 2002)
홍성유, 『한국경제와 미국원조』(박영사, 1962)

논문

이동원, 「이승만 정권기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 연구」(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9)
주석
주1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외교·정보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국제적 대립. 특히 제이 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뜻하며, 1990년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양 진영 사이의 냉전 상태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우리말샘

주2

1947년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에서 그리스·튀르키예에 대한 군사 원조를 요청할 때 선언한 외교 정책의 새로운 원칙. 자유주의 진영에 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에 힘으로 대항한다는 의사를 명백히 하여 냉전(冷戰)을 공식화하였다. 우리말샘

주3

모든 재산과 생산 수단을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하여 계급의 차이를 없애는 것을 내세우는 사상. 우리말샘

주4

제이 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피폐한 국가들에 원조를 제공했던 사회 보장 계획의 관리 기구. 44개국의 협정에 의하여 1943년 11월에 창설되었고, 1947년에 활동이 정지되었다. 우리말샘

주5

물품이나 돈 따위로 도와줌. 우리말샘

주6

제이 차 세계 대전 후에, 미군 점령지의 질병·기아 따위로 인한 사회 불안을 제거하고 점령 행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미 육군 예산에서 지출한 자금.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식량, 의약품, 석유 따위의 원조 물자를 제공받았으나 1948년에 정부 수립과 함께 중단되었다. 우리말샘

주7

정치적·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의 기능을 하며, 정치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우리말샘

주8

한국은행 조사부, 「미국의 대한원조, 1945.9-1954.5」(『한국은행 조사월보』 70, 한국은행, 1954), 36~39쪽; 이동원, 「이승만 정권기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21쪽에서 재인용.

집필자
신재준(전주교대 교수, 한국현대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