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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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은 일제강점기 『쇄기』, 『효경장구』, 『사례수용』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다. 자는 이회, 호는 중재이다. 다른 이름은 김우림(金佑林)이다. 1896년(고종 33)에 출생하여 1978년 사망했다. 한주학파(寒洲學派) 곽종석의 문인이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을 만났다. 김창숙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면서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 1928년 산청군 신등면에서 강학을 시작해 약 50년 동안 1천여 명의 문도를 길러냈다. 김황은 한주학파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기반으로 하는 도학을 정립하였다.
김황 (金榥)
김황은 일제강점기 『쇄기』, 『효경장구』, 『사례수용』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다. 자는 이회, 호는 중재이다. 다른 이름은 김우림(金佑林)이다. 1896년(고종 33)에 출생하여 1978년 사망했다. 한주학파(寒洲學派) 곽종석의 문인이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을 만났다. 김창숙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면서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 1928년 산청군 신등면에서 강학을 시작해 약 50년 동안 1천여 명의 문도를 길러냈다. 김황은 한주학파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기반으로 하는 도학을 정립하였다.
조선 후기에, 지평, 부교리 겸 동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문신·독립운동가.
이만규 (李晩煃)
조선 후기에, 지평, 부교리 겸 동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문신·독립운동가.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칠곡 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 제2차 유림단운동 영남대표 등을 역임하며 일제의 통치에 저항한 학자·독립운동가.
장석영 (張錫英)
일제강점기 때, 칠곡 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 제2차 유림단운동 영남대표 등을 역임하며 일제의 통치에 저항한 학자·독립운동가.
한중협회는 1921년 9월 27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조직된 한국 독립지원단체이다. 임시정부 및 한국 측 인사와 중국 국민당 및 기타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독립과 한중 우호를 위한 협조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기관지 『광명월보(光明月報)』 를 발행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고, 4개의 부서를 두어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한중협회 (韓中協會)
한중협회는 1921년 9월 27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조직된 한국 독립지원단체이다. 임시정부 및 한국 측 인사와 중국 국민당 및 기타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독립과 한중 우호를 위한 협조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기관지 『광명월보(光明月報)』 를 발행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고, 4개의 부서를 두어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
한주학파 (寒洲學派)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