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성(眞城). 초명은 이만효(李晩孝). 자는 순칙(順則), 호는 유천(柳川). 경상북도 안동 출신. 대사성 이휘준의 아들로 이휘택(李彙澤)에게 입양되었으며, 애국지사 이만도(李晩燾)의 아우이다.
1879년(고종 16) 생원이 되고, 188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직장·전적·지평을 역임하였다. 1894년 부교리 겸 동학교수(副校理兼東學敎授)가 되었으나 이듬해 을미사변으로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사직하였다. 1896년 예안군수가 되었으나,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향리에 은퇴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우리나라가 병탄되자 입산하여 단식하고, 이듬해 일제가 주는 이른바 은사금을 거절하였다.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고,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과 협의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뒤 검거되어 성산(星山)감옥에서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