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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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9년 중 반 년이 안될 정도로 짧다. 신무왕 재위기는 원성왕 자손들 간에 치열한 왕위계승분쟁이 이어지던 시기이다. 아버지 김균정을 왕에 옹립하려던 싸움에서 패하고 청해진의 장보고에 의탁하고 있던 우징은 장보고의 도움으로 민애왕 토벌에 나섰다. 민애왕은 김균정을 살해하고 세운 희강왕을 다시 반란으로 자진케 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민애왕이 전투 중 도망가다가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우징이 신무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장보고의 압력을 받다가 몇 달 만에 병사했다.
신무왕 (神武王)
신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9년 중 반 년이 안될 정도로 짧다. 신무왕 재위기는 원성왕 자손들 간에 치열한 왕위계승분쟁이 이어지던 시기이다. 아버지 김균정을 왕에 옹립하려던 싸움에서 패하고 청해진의 장보고에 의탁하고 있던 우징은 장보고의 도움으로 민애왕 토벌에 나섰다. 민애왕은 김균정을 살해하고 세운 희강왕을 다시 반란으로 자진케 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민애왕이 전투 중 도망가다가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우징이 신무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장보고의 압력을 받다가 몇 달 만에 병사했다.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흥덕왕 (興德王)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
헌덕왕 (憲德王)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
신라 헌덕왕 때 반란자 김헌창(金憲昌)이 세운 나라.
장안국 (長安國)
신라 헌덕왕 때 반란자 김헌창(金憲昌)이 세운 나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족 김헌창이 세운 장안국의 연호.
경운 (慶雲)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족 김헌창이 세운 장안국의 연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소판으로 집사부 시중을 역임한 관리.
김종기 (金宗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소판으로 집사부 시중을 역임한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일길찬으로 김헌창의 난을 평정한 관리. 장군.
장웅 (張雄)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일길찬으로 김헌창의 난을 평정한 관리. 장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완산주장사, 속함군태수 등을 역임한 관리. 지방관.
최웅 (崔雄)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완산주장사, 속함군태수 등을 역임한 관리. 지방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파진찬으로 시중을 역임한 관리.
김장여 (金璋如)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파진찬으로 시중을 역임한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관리.
영충 (令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위공 (衛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헌창의 난 당시의 관리.
윤응 (允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헌창의 난 당시의 관리.
성주사(聖住寺)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본래 백제 오합사였으며, 김인문이 웅천주 일대를 봉지로 받으며 사찰을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김헌창의 난으로 폐허화가 된 것을 847년 무염이 주석하면서 크게 확장하자 왕이 ‘성주’라는 이름을 내렸다. 13세기 중엽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가 13세기 후반에 중건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다가 17세기 완전히 폐사되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와 보물로 지정된 4기의 석탑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성주산 성주사 (聖住山 聖住寺)
성주사(聖住寺)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본래 백제 오합사였으며, 김인문이 웅천주 일대를 봉지로 받으며 사찰을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김헌창의 난으로 폐허화가 된 것을 847년 무염이 주석하면서 크게 확장하자 왕이 ‘성주’라는 이름을 내렸다. 13세기 중엽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가 13세기 후반에 중건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다가 17세기 완전히 폐사되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와 보물로 지정된 4기의 석탑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