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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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노강서원 강당은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노강서원 경내에 있는 강당 건물이다. 노강서원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강당과 동서재로 이루어진 강학 공간이 있고, 그 뒤로 사당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충남지역 서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맞배지붕의 박공면 풍판 밑에 짧은 덧지붕을 눈썹처럼 달아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강당은 1675년 서원 창건 시 건립된 것으로 규모나 형태는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서원 강당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규모에 맞게 부재나 가구 구조가 견실하고 안정된 구법을 보여준다.
논산 노강서원 강당 (論山 魯岡書院 講堂)
논산 노강서원 강당은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노강서원 경내에 있는 강당 건물이다. 노강서원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강당과 동서재로 이루어진 강학 공간이 있고, 그 뒤로 사당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충남지역 서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맞배지붕의 박공면 풍판 밑에 짧은 덧지붕을 눈썹처럼 달아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강당은 1675년 서원 창건 시 건립된 것으로 규모나 형태는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서원 강당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규모에 맞게 부재나 가구 구조가 견실하고 안정된 구법을 보여준다.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조선 후기에, 안변부사,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윤황 (尹煌)
조선 후기에, 안변부사,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