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노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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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노수신이 을사사화로 유배되어 거처하던 유배지. 적소(謫所).
노수신 적소 (盧守愼 謫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노수신이 을사사화로 유배되어 거처하던 유배지. 적소(謫所).
조선전기 세자시강원설서, 홍문관부수찬, 제술관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인후 (金麟厚)
조선전기 세자시강원설서, 홍문관부수찬, 제술관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박수일 (朴遂一)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유정은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자 사명파의 조사로서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끈 승장이다. 승과 합격 후 휴정의 법을 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킨 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지휘했다. 전후에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화친 방안을 논의했다.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을 남긴 조선시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유정 (惟政)
유정은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자 사명파의 조사로서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끈 승장이다. 승과 합격 후 휴정의 법을 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킨 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지휘했다. 전후에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화친 방안을 논의했다.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을 남긴 조선시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조선 전기에, 선릉참봉, 공조좌랑,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연경 (李延慶)
조선 전기에, 선릉참봉, 공조좌랑,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병조정랑,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송언신 (宋言愼)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병조정랑,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사간원정언,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송응개 (宋應漑)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사간원정언,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이조정랑, 병조정랑,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원록 (李元祿)
조선 전기에, 이조정랑, 병조정랑,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중열 (李中悅)
조선 전기에,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조선전기 학자 노우명(盧友明, 1471~1523)의 신도비와 묘표이다. 201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재 노수신이 신도비명을 찬술하고, 여성위 송인이 글씨를 썼다. 묘표는 쌍분의 무덤 앞에 각각 세워져 있다. 비음기가 있는데 이는 아들 노진이 기록한 것이다. 1577년(선조 10)에 세워진 이후 일체 보수나 변개가 없었다. 경상우도 학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의 신도비이고, 임진왜란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는 경상남도 지역에 남아 전하는 것이 드문 신도비다.
함양 평촌리 신고당 신도비 및 부부 묘표 (咸陽 坪村里 信古堂 神道碑 및 夫婦 墓表)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조선전기 학자 노우명(盧友明, 1471~1523)의 신도비와 묘표이다. 201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재 노수신이 신도비명을 찬술하고, 여성위 송인이 글씨를 썼다. 묘표는 쌍분의 무덤 앞에 각각 세워져 있다. 비음기가 있는데 이는 아들 노진이 기록한 것이다. 1577년(선조 10)에 세워진 이후 일체 보수나 변개가 없었다. 경상우도 학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의 신도비이고, 임진왜란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는 경상남도 지역에 남아 전하는 것이 드문 신도비다.
이준이 노수신에게 보낸 편지인 「상노소재서」중에서 이황을 비난한 내용에 대하여 논박한 유학서. 논박서.
무서변파록 (誣書辯破錄)
이준이 노수신에게 보낸 편지인 「상노소재서」중에서 이황을 비난한 내용에 대하여 논박한 유학서. 논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