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여자애국단"
검색결과 총 8건
1919년 3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부녀자들이 동포간의 단결을 도모하고 물자절약을 통한 독립운동 후원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
부인친애회 (婦人親愛會)
1919년 3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부녀자들이 동포간의 단결을 도모하고 물자절약을 통한 독립운동 후원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강혜원 (康蕙園)
강혜원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초대 총단장, 흥사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85년(고종 22)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05년 동생 강영승의 노동이민에 어머니 황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여 임시정부 지원, 독립신문 후원, 적십자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사단에 입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Dinuba 韓人長老敎會)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강원신은 일제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한부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남편 강영승 등 시댁 식구와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다가 이후 미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한인 여성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애썼으며, 대한인국민회 후원 활동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후원금 및 각종 구호금을 보냈으며,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도 수행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강원신 (康元信)
강원신은 일제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한부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남편 강영승 등 시댁 식구와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다가 이후 미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한인 여성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애썼으며, 대한인국민회 후원 활동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후원금 및 각종 구호금을 보냈으며,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도 수행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성선은 일제강점기 미국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4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3·1운동에 영향받아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 8월 각 지역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이 출범하자, 총단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총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해방 이전까지 광주학생운동, 국내 수재민 구제, 재만 한인 구제 등의 국내외 사회문제를 위한 지원금 모금 활동에 앞장섰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성선 (韓成善)
한성선은 일제강점기 미국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4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3·1운동에 영향받아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 8월 각 지역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이 출범하자, 총단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총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해방 이전까지 광주학생운동, 국내 수재민 구제, 재만 한인 구제 등의 국내외 사회문제를 위한 지원금 모금 활동에 앞장섰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제현은 일제강점기 미주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태어났으며, 출신지는 미상이다. 대한인국민회 후원과 일화 배척을 목적으로 조직된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미주 지역 여성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대한여자애국단에도 참여하였다. 본부와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회장과 위원을 역임하면서 한인 여성 사회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제현 (梁齊賢)
양제현은 일제강점기 미주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태어났으며, 출신지는 미상이다. 대한인국민회 후원과 일화 배척을 목적으로 조직된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미주 지역 여성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대한여자애국단에도 참여하였다. 본부와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회장과 위원을 역임하면서 한인 여성 사회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메불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대한인국민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여자애국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동포 구제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메불 (林메불)
임메불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대한인국민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여자애국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동포 구제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차보석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재상해유일학생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흥사단에도 가담하였다. 이후 도미하여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성 이민 사회의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과 구제 활동, 동포 사회 계몽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차보석 (車寶錫)
차보석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재상해유일학생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흥사단에도 가담하였다. 이후 도미하여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성 이민 사회의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과 구제 활동, 동포 사회 계몽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