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평안남도 맹산군에 태어났다. 이명은 황보석(黃寶石) · 차보석(車寶石)이다.
이화학당과 일본 고베[神戶] 가사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오빠 차이석(車利錫)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1년 상하이에서 재상해유일학생회(在上海留日學生會)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흥사단(興士團)에도 가담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25년부터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여자애국단은 1919년 8월 5일 탄생하였으며, 초기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가 1933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갔다. 교포 사회를 계몽하고 상호 구제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고국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의연금을 보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독립 자금을 모아서 보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의연금을 모금하여 중국군과 광복군을 지원하였고, 태평양전쟁 때는 미국 적십자 사업을 지원하고 한인 출전 군인에 대한 위문 활동을 하였다.
차보석은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이어 1929년에는 서기로, 1930~1931년에는 재무로 활동하였다. 1929년 7월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의 여성들이 조직한 대한인여자저금회의 재무로 선출되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회에서 국어학교 교사로도 활동하였으며, 1931년에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가입하였다. 1932년 3월 21일 사망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