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신은 일제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한부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남편 강영승 등 시댁 식구와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다가 이후 미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한인 여성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애썼으며, 대한인국민회 후원 활동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후원금 및 각종 구호금을 보냈으며,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도 수행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87년에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강영승(康永昇)과 결혼하였다.
1905년 5월 도릭선을 타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하였다. 하와이 도착 후, 마우이(Maui)에 있는 키파훌루(Kipahulu) 사탕수수 농장을 배정받아 사탕수수 노동자가 되었다. 이후 한인 노동자가 가장 많았던 오아후(Ohau)의 에와(Ewa)농장으로 이동하였다.
1913년경 남편이 미 대륙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됨에 따라, 시누이 강혜원(康蕙園)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다뉴바(Dinuba)로 이주하여 포도 농장에서 일하였다. 시간당 15센트의 임금을 받으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한편,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일에는 다뉴바 지방에서 강혜원, 한성선, 김경애 등과 함께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한인 여성들의 민족정신 고취를 위해 애썼으며, 미주 항일 민족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활동을 후원하였다.
1919년 5월 18일 새크라멘토(Sacramento)의 한인부인회(韓人婦人會)와 합동발기문을 선언하여 각 지역 부인회의 통합을 촉진하였다. 8월 2일, 다뉴바의 한인장로교회에서 다뉴바 신한부인회, 월로우스(Willow) 지방 부인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인회 합동발기대회를 개최하고,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운동 기관인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을 창설하였다.
강원신은 대한여자애국단 창설 후 재무 및 제3대 총단장을 역임하였다. 미주 한인 여성들과 함께 매월 3달러의 단비(團費)를 수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함으로써 외교 · 선전 · 군사 활동을 후원하였다. 또한 각종 구호금을 수합하여 국내에 송금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1,000달러, 임시정부 공복위로금 500달러, 상하이[上海]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에 300달러,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 군축선전비 500달러,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 식자기값 500달러, 간도 동포 기근 구제금 67달러, 중국 송미령(宋美齡) 여사의 군사 위로금 370달러, 멕시코 한인 동포의 하바나 이주 비용 동정금 40달러, 쿠바 맛단사스 지역 한인 구제금 55달러, 수재민 구제금 368달러, 본국 수재민 구제금 172달러, 본국 소년갱생운동 55달러, 황은순고아원에 58달러, 2차 세계대전 시 미군적십자사에 570달러, 로스앤젤레스 출정군인무도회(出征軍人舞蹈會)에 194달러 등 총 46,298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모집하고 송금하였다.
이 외에도 미주 내 한인 동포 자녀를 대상으로 민족 교육을 실시하고, 일본 상품 불매 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등 모국의 독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1977년 2월에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