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애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 엘리트 여성으로,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였다.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한국광복진선 구축에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89년 6월 21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에서 태어났다. 하와이로 이주한 교사 출신 사진신부(寫眞新婦)로, 이른바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 외 가족 관계나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대 말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로부터 재정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 한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자금 모집에 앞장섰다. 한인 사진신부들은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으로 유입된 유럽 및 아시아 출신 여러 사진신부 집단 가운데 정치적 활동을 수행한 유일한 집단으로 평가된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였다. 한국광복진선에는 미주 지역 6개 단체도 참여하였는데,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참여하였다. 한국광복진선은 중일전쟁을 한 · 중의 독립이 걸린 최후의 관건으로 파악하고, 중국과 함께 항일 전선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는 등 한중 연대를 강조하였다.
박신애는 이처럼 미주에서 중국 관내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노력하였다. 미주 한인 여성 지도자로서, 세계사적 시각에서 중국과의 협력 같은 외교적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수행한 인물이다. 광복 이후에도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大韓婦人救濟會) 중앙본부 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4월 27일 사망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