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 23일 평양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명은 이수산(李壽山)이다. 고위급 양반가 출신으로, 당시 명문이었던 진명여고와 이화학당을 졸업하였다. 오빠는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서울의 경성병원에서 일하였다. 오빠의 소개로 보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류(K.S.Lyu)와 결혼하였다. 1916년, 2살이었던 첫딸 스텔라[Stella O.H, Lee, 19152010]를 데리고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1917년 둘째 딸 엘렌[Ellen O.I. Lee, 19172008]을 낳았으나, 별거 끝에 이혼하였다.
이후 1920년 5월 이동빈[Henry D.B. Lee, 1899~1947]을 만나 재혼하였다. 두 번째 남편은 한인 1.5세로, 미드퍼시픽학교를 졸업하고 설탕 회사에서 화학 연구원으로 근무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었다. 이후 4명의 자녀를 더 낳아 6명의 자녀로 구성된 대가족을 꾸리고 살았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채를 발행했을 때 15달러 상당을 매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1919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창립된 대한부인구제회[The Korean Women's Relief Society]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이승만을 후원한 동지회[Comrades Society]에서도 활동하였다.
당시 하와이 한인 사회의 여성 집단은 크게 세 가지 층위로 구분되는데, 전도부인(傳道夫人)을 포함하는 노동 이민 1세대, 사진신부(寫眞新婦) 집단, 그리고 1.5세대와 2세대 중 미국 교육 과정을 경험한 엘리트 여성 집단이다. 하와이 여성 단체는 '남성 지도자 - 노동 이민 1세대 여성 - ‘모국에서 고등교육을 경험한’ 사진신부 - ‘미국의 정규 과정을 경험한’ 1.5세대와 2세대 엘리트 여성'의 흐름으로 지도자의 층위가 변화하여 갔다.
모국에서 고등교육 및 독립운동을 경험한 한인 1세대 여성들도 있었으나, 그 수가 매우 적었다. 전수산도 그러한 배경을 갖는 한인 1세대 엘리트 여성으로, 하와이 내 한인 여성 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특히 1942년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대한인부인구제회 회장으로 재임하였다.
교육 문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하와이로 이주하자마자 한인 교회에서 교사가 되어 한인 2세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하와이 호놀룰루 여성기독교연합회[YWCA]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황하수(Ha Soo Whang)가 형제클럽[Hyung Jay Club]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에 참여하였다. 주로 교사로 활동하면서 직접 무대에 올라 음악 공연도 수행하였다. 또한 호놀룰루 아카데미 오브 아트(Honolulu Academy of Arts)에서 한국 관련 수업을 하는 교사 겸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03년에 전수산의 둘째 딸의 아들인 티모시 최(Timothy Choy)가 할머니의 뜻을 따라 그녀의 소장품들을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하였다. 그가 기증한 자료들은 전수산 컬렉션[Susan Chun Lee Collection]으로 명명되어 하와이 한인 여성사 및 문화사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