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대한부인구제회 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이후 1920년 5월 이동빈[Henry D.B. Lee, 1899~1947]을 만나 재혼하였다. 두 번째 남편은 한인 1.5세로, 미드퍼시픽학교를 졸업하고 설탕 회사에서 화학 연구원으로 근무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었다. 이후 4명의 자녀를 더 낳아 6명의 자녀로 구성된 대가족을 꾸리고 살았다.
주요 활동
당시 하와이 한인 사회의 여성 집단은 크게 세 가지 층위로 구분되는데, 전도부인(傳道夫人)을 포함하는 노동 이민 1세대, 사진신부(寫眞新婦) 집단, 그리고 1.5세대와 2세대 중 미국 교육 과정을 경험한 엘리트 여성 집단이다. 하와이 여성 단체는 '남성 지도자 - 노동 이민 1세대 여성 - '모국에서 고등교육을 경험한' 사진신부 - '미국의 정규 과정을 경험한' 1.5세대와 2세대 엘리트 여성'의 흐름으로 지도자의 층위가 변화하여 갔다.
모국에서 고등교육 및 독립운동을 경험한 한인 1세대 여성들도 있었으나, 그 수가 매우 적었다. 전수산도 그러한 배경을 갖는 한인 1세대 엘리트 여성으로, 하와이 내 한인 여성 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특히 1942년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대한인부인구제회 회장으로 재임하였다.
교육 문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하와이로 이주하자마자 한인 교회에서 교사가 되어 한인 2세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하와이 호놀룰루 여성기독교연합회[YWCA]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황하수(Ha Soo Whang)가 형제클럽[Hyung Jay Club]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에 참여하였다. 주로 교사로 활동하면서 직접 무대에 올라 음악 공연도 수행하였다. 또한 호놀룰루 아카데미 오브 아트(Honolulu Academy of Arts)에서 한국 관련 수업을 하는 교사 겸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03년에 전수산의 둘째 딸의 아들인 티모시 최(Timothy Choy)가 할머니의 뜻을 따라 그녀의 소장품들을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하였다. 그가 기증한 자료들은 전수산 컬렉션[Susan Chun Lee Collection]으로 명명되어 하와이 한인 여성사 및 문화사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 근대 여성의 미주지역 이주와 유학』(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8)
- 이선주, 로버타 장, 『하와이 한인사회의 성장사 1903~1940 초창기 이민자들과의 인터뷰』(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4)
논문
- 노선희, 「한인여성 디아스포라 공동체 연구: 사진신부의 공동체, 영남부인실업동맹회(영남부인회)를 중심으로」(『여성과 역사』 34, 한국여성사학회, 2021)
- 최희영, 「전수산의 공연 활동에 구현된 20세기 초 한인 디아스포라 근대 여성의 초상」(『한국문화』 95,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신문·잡지 기사
- “Susan Lee Dies: Former Teacher”(*Honolulu Star-Bulletin*, 24 June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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